[책과 길] “참지말고 슬퍼하라… 그래야 받아들이게 된다”
입력 2014-04-25 02:31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민음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 있다. 살아있는 자의 슬픔을 표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슬픔이다. 더 비통한 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현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상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이들의 값싼 조언이 넘쳐나는데. 이 책이 손에 잡힌 건, 스스로 슬픔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들이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며 건네는 이야기라서다.
저자 슈창베르제 프랑스 니스대 명예교수는 열 일곱 살 때 네 살 어린 여동생의 죽음을 지켜봤다. 병원균인지 바이러스인지도 모르는 무언가에 감염돼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 대해 더 이상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름도 바꾸고 대학 진로도 바꿨다.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던 그는 1967년부터, 프랑스 니스대학 사회임상심리연구소에서 집단 심리극을 통해 상담과 치료를 하며 죽음과 이별, 그 과정에서 감정을 다스리고 슬픔에서 벗어나는 법을 연구했다.
또 다른 저자 죄프루아는 바로 슈창베르제 교수의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고통을 극복한 인물이다. 죄프루아는 스물 다섯에 생후 6개월 된 둘째 아이, 소피아를 갑작스레 떠나보냈다. 얼마 뒤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지만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딸의 죽음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던 그는 20년쯤 흐른 1995년, 슈창베르제 교수가 지도하는 제노소시오그램 연수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할 수 있었다. 그 누구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고, 심지어 딸의 묘지에도 혼자 가지 못하던 그녀는 그때서야 비로소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죄프루아는 심리가족력, 집단극을 통한 치료 방법을 공부하고, 현재 심리 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애도(哀悼)’,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제대로 해냄으로써 슬픔과 상실감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한 애도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는 비탄에 잠긴 개인들에게 자아를 억제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라고 가르쳐왔다. “슬픔을 표현할 수 없었거나 슬픔을 털어 내고 다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때때로 우리는 병에 걸리고, 슬픔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더구나 어떤 경우에든 사회는 우리를 돕기는커녕, 애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꿋꿋하게 견뎌 나가기를,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빨리 예전처럼 돌아가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애도의 과정이 쉽지 않음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리게 된다. “애도의 시간은 매우 길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이나 어떤 것을 상실한 것으로 인해 평생 괴로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쿠블러 로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애도의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갑작스런 상실에 충격과 쇼크를 받고 사실을 부정하며 화를 내고 분노한다. 급기야 두려움과 우울증에 빠지고 깊은 슬픔에 갇히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면 비로소 용서할 수 있다.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체념적인 수용이나 포기가 아닌 발전적인 의미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마음의 평정과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주변에선 어떻게 도와야 할까. 어설픈 조언은 금물이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더라도 ‘옆에 있어주는 것’이 좋다. 장례식에 참석한 뒤 그 후로 얼굴도 한번 내밀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야말로 도움과 배려가 가장 필요한 시기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에게 자기들끼리 알아서 공허함이나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과 시간이 지나가면, 상실과 죽음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뿐 아니라, 진정한 애도를 통해 마음속에 잊지 않는 존재를 기억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없다. 당신은 충분히 아팠다. 이제 다시 삶을 시작하라.” 이들의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듯하다. 허봉금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