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新 모계사회

입력 2014-04-25 02:30

음식점 이름으로 ‘고모집’보다 ‘이모집’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뭘까. 소설가 복거일은 최근의 화제작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이는 뿌리 깊은 여성족외혼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핏줄이 확실한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모는 고모에게 백전백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인원 계통의 모든 종들이 채택한 여성족외혼은 천만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시집가는 이 풍습은 필연적으로 남성 우월주의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이 관행도 종착역에 도착한 것과 마찬가지.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에 힘입어 이제는 모든 가정생활이 남편과 아들 중심에서 아내나 딸 위주로 바뀐 신(新)모계사회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칠팔 할 이상 시어머니의 완패로 끝났고, 되레 장모와 사위의 미묘한 신경전인 장서 갈등이 등장할 정도 아닌가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며느리 정체성은 극도로 약화되면서 남성에게 새로운 사위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부모상에 조문객이 뜸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인이나 장모상에 손님이 없으면 능력 없는 사위 또는 형부나 매형으로 낙인찍혀 처가 쪽에 기가 팍 죽는 것이 대다수 남자들의 자화상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결혼 커플 양태도 더 이상 여성이 우리 사회의 약자가 아님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부부 100쌍 가운데 무려 16쌍이 연상녀-연하남 커플이라고 한다. 역대 최고 비율이다. 장유유서의 질서가 펄펄 살아 있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빨리 누나뻘 되는 여자와 사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급변할 줄 누가 알았으랴.

사실 호주제와 부성주의(父姓主義)가 남녀평등의 이상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 난 이후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변했다. 신모계사회로 질주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남성들이 위기의식을 오죽 느꼈으면 단체를 만들어 역차별 시정을 요구했겠는가.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에게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애지중지 키운 자식마저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 국민들은 실감나게 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 세기가 가기 전 결혼 자체가 없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혼인으로 인한 여성의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