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장인’ 에 의한 한옥의 재탄생 현장 기록

입력 2014-04-25 02:23 수정 2014-04-25 11:07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황인범/돌베개

제목이 시사하듯 서울 경복궁 옆 서촌 자하문로5가에 있는 오래된 한옥의 대수리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주택 건축에 관한 썼지만, 공사 전후를 상업적인 감각으로 보여주는 트렌디한 책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여러 면에서 이색적이다. 집 주인부터 심상치 않다. 동네 이웃들로부터 ‘파 교수’라 불리는 로버트 파우저(53)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집 주인이다. 1980년대 초 미국 미시간대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며 한국어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83년 서울로 1년간 어학연수를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일본에서 13년간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2008년 서울대에서 한국어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정착 생활에 들어간다.

2011년 대지 21평, 건물 12평 규모의 이 집을 사들인 뒤 평소 알고 지내던 도편수 황인범(45)씨에게 대대적인 수리를 맡긴다. 평생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며 ‘말의 흥’을 즐겨왔던 사람답게, 집에 ‘어락당(語樂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왜 한옥에 살까. 첫 번째 이유는 마당 좋고 채광 좋고 통풍이 잘 되는 한옥 그 자체를 좋아해서란다. 이어서 내놓는 “한국 사회의 획일성에 대한 일종의 반기”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주류 문화 중심으로 획일적인 생활 태도를 보이는 한국에서 한옥에 산다는 것은 수많은 주류의 길과 달리 내가 선택한 나만의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일종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런 파우저 교수로부터 제안을 받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사를 맡은 도편수 황씨 역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나무가 좋아서 전통 건축 현장에서 나무를 만지는 걸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의 문화재수리현장에서 목수와 도편수로 일했다. 2010년 서촌의 도시형한옥대수선현장의 도편수를 맡은 뒤 여러 채의 한옥을 새로 빚어내면서 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다. 보통 한국의 건축 책은 건축주나 건축가가 쓰던 관행에 비하면 시공자라 할 수 있는 도편수가 직접 책을 쓰는 건 드문 일이다.

자연스레 다른 건축 책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집 짓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책 속에서 목수, 기와장, 석공, 칠장이, 도배 기술자, 차양 노동자 등의 이야기가 낯설지만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옥은 노동력, 무엇보다 ‘장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집”이라는 저자의 말에 바로 수긍하게 된다.

전통적인 가옥 한옥에 어떻게 21세기 현대인의 일상을 접목시킬까, 한옥을 짓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과 인력이 홀대받고 급기야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황 도편수가 현장에서 가졌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집 짓고 나면 건축주와 시공자는 상종도 하지 않는다는데, 파우저 교수와 황 도편수는 이 과정을 통해 한층 더 끈끈한 관계가 됐다고 한다. “한옥의 기본적인 요소는 조화와 균형이다. 주변의 자연, 건물, 역사와 조화를 이루고 그 집 자체로서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저자의 철학이 어락당이라는 한옥 자체는 물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집이 아니라 결국 집 짓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