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정부 관리 감독 무디게 하는 주범 ‘마피아’들… 퇴직 관료가 업계 요직
입력 2014-04-24 03:25
세월호 참사의 배경으로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지목되고 있다. 해수부 출신 관료가 오랫동안 낙하산으로 간부를 맡은 한국선급, 해운조합 등이 여객선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한 데 문제의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료 출신이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해 요직을 독차지하는 것은 해수부만의 일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의 마피아 행각은 해피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선 관료 출신이 퇴직 후 관련 협회나 조합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관습을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부 산하 협회는 퇴직 공무원 재취업 자리=국내 자동차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김용근 회장은 옛 산업자원부 출신이다. 산업정책본부장(차관보)을 끝으로 산업부에서 퇴직한 뒤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을 거쳐 지난해 10월 취임했다. KAMA는 2011년까지는 각 업체 대표가 차례로 비상근 회장을 맡고 산업부 출신이 상근 부회장을 맡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한 업체의 외국인 대표 차례가 되자 자격 시비가 불거지면서 산업부 출신이 아예 상근 회장을 맡게 됐다. 업체끼리 돈을 걷어 운영하는 민간협회에 고위 공무원 출신이 회장으로 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산업부 산하 약 60개 협회·재단·진흥회·연구원에서 이런 일들이 당연시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상근 부회장은 대체로 산업부 차관급 인사가, 대한상공회의소의 상근부회장은 1급 인사가 간다. 각종 협회에도 산업부 퇴직 국·과장들이 두루 포진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 업무상 많이 찾는 민간인증기관 10곳에는 산업부 출신 관료가 회장, 원장, 부위원장, 부원장 등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다. ‘산피아’(산업부+마피아) 세상인 셈이다.
◇모피아에서 국피아까지=금융·증권 분야에서는 ‘모피아’(옛 재무부(MOF)+마피아)의 퇴임 이후를 위한 일자리가 상당수다. 기재부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출신은 퇴직 이후 당연한 듯 각종 금융업권 협회에 재취업하고 있다. 은행협회 회장직은 9대 유지창·10대 신동규·11대 박병원 등 3차례 연속 모피아의 몫이다. 금융투자협회에도 기재부, 금감원, 금융위 출신 인사가 상당수다. 연봉이 높은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금융계 사업자단체는 모피아가 주요 보직을 싹쓸이하고 있다.
‘국피아’로 불리는 국토교통부 퇴직 공무원도 대한건설협회, 건설공제조합, 한국주택협회 등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은 제약업계와 식품업계 협회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많다.
행정 전문가들은 고위 관료 출신이 협회로 옮기는 것 자체보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황선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23일 “협회들이 실질적인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관리·감독은 정부가 할 일이지 협회에 맡길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전 분야 공무원 민간 재취업 규제해야”=지난해 불거졌던 원전 비리의 배경에는 ‘원전 마피아’가 있었다. 협력업체에 재취업한 한국수력원자력 퇴직자들이 불량부품 납품의 장본인이었다. 정부는 한수원 출신의 협력업체 취업을 제한한다는 대책을 내놨으나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범위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했던 퇴직 공무원의 민간 분야 재취업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의 퇴직 공직자의 사기업체 관련 취업제한 규정은 ‘사기업체의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법인·단체’로 애매하다. 그나마 국가와 자치단체가 위임한 사무를 수행하는 협회 등에는 취업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에서 은퇴해 공공기관으로 가는 사람들은 정부의 ‘창’에 대해 이를 무디게 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면서 “협회와 재단에 대해 총체적인 점검을 할 필요가 있고 안전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