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꾸밈없는 詩, 세련된 사운드에 녹아들어… 새 앨범 낸 아마도 이자람 밴드

입력 2014-04-24 02:33


‘귀천’의 시인 천상병(1930∼1993)과 전방위 예술가 이자람(34)이 만났다.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멤버 이자람 이민기 강병성 이향하 김홍식)가 1년 만에 새 앨범 ‘크레이지 배가본드’로 돌아왔다. 천상병의 시 ‘나의 가난은’, ‘크레이지 배가본드’, ‘달빛’ 등 일곱 편에 곡을 입힌 시도다. 천상병은 알았을까. 자신의 시가 노래가 돼 우리에게 불려질 줄을.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16길 연습실에서 아마도 이자람 밴드를 만났다. 이자람은 “결과물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한 마음이 크다”고 했고, 김홍식(30)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지라도 우리는 안다. 조금씩 더 발전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다”며 들뜬 속내를 비쳤다.

이자람은 10대 때 판소리 심청가, 20세 때 춘향가를 완창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극 ‘사천가’와 ‘억척가’로 재해석해 직접 감독하고 연기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폴란드 콘탁국제연극제에선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로도 활약하고 있는 일렉기타 이민기(32), 국악 전공의 퍼커션 이향하(29)와 드럼 김홍식, 베이스 강병성(31) 등 멤버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밴드가 시작된 건 2004년. 첫 싱글 앨범은 2009년, 정규 앨범은 2013년에 발매하면서 느리지만 곧은 걸음을 걷고 있다.

이번 앨범은 2010년 천상병 예술제에 참여한 인연에서 시작됐다. 당시 천상병의 시를 가사로 한 창작곡을 선보였는데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만든 곡들이 그 자리에 모인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앨범으로 바로 만들고 싶었지만 당시엔 정규 앨범도 나오기 전이었죠. 그래서 이제야 가지고 나왔어요. 오래 기다린 앨범이에요.”(이자람)

타이틀곡 ‘은하수로 간 사나이’는 천상병의 시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두 번째 연을 따 왔다. ‘저별은 은하수 가운데서도 제일 멀다/ 2억 광년도 넘을 것이다/…/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잡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가시오.’

천상병 특유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시구 위에 3박자 리듬과 서정적 멜로디가 세련된 사운드로 표출된다. 이자람에게 밴드 음악이란 무엇일까 물었다.

“밴드를 안 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뭔가를 따로 입어야 할 필요도 없고 아무런 생각과 치열한 고민 없이도 그냥 좋아서 하는 음악.” 이자람이 이렇게 대답하자 멤버들은 “우리가 사람 살린 것”이라며 웃었다. 이자람은 “같은 취향을 갖고 모여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인 것 같다”며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계속 음악을 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앨범에는 이 에너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강병성은 “멤버들이 모두 각자의 색깔을 확실히 만들고 뭉쳐 만들게 된 앨범”이라고, 이향하는 “이번 작업을 끝낸 뒤 무대 위에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자평했다. 밴드는 오는 25일과 26일, 경기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KT&G 상상아트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연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아 좋아요. 8년쯤 함께했으면 앨범 4장쯤 내고 그만 두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할 텐데 저흰 배움이 늦어서 그런지 이제야 제대로 시작하네요. 앞으로가 더 기대돼요.”(이민기)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