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의 父子, 중년을 사로잡다… 아버지 유봉 역 양준모·아들 동호 역 마이클 리

입력 2014-04-24 02:26


서울 천호대로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선 뮤지컬 ‘서편제’ 공연이 한창이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가는 선의 배우 마이클 리(40)가 마치 ‘아해’와 같이 동요를 부른다. 긴 광목천을 이용한 무대 미술이 돋보인다. 미 브로드웨이 출신 재미교포 2세 뮤지컬 스타가 우리 동요와 판소리를 부르며 동호 역을 소화해 내고 있다.

그리고 곧 장면이 전환된다. “도망가고 싶겠지. 소리가 소리하는 세상.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러라. 내 소리를 들어. 나는 이 세상에 왕. 소리를 질러라.” 동호의 아버지 유봉이 노래로 동호를 나무라고 있다. ‘조선 최고의 소리꾼’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유봉 역 양준모(34)의 두터운 성량이 객석을 휘감고 돈다. 객석은 여느 뮤지컬 무대와 달리 중년 관객이 많았다. 소리꾼 삶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리와 양준모를 ‘세월호 침몰’로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세월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정전되듯 정지됐다. 무대도 슬픔에 잠겨 밝은 곡이 관객의 귀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 다행히 이날부터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양준모는 “‘서편제’는 그래도 무게가 있는 작품이어서 다른 공연보다 사고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말이 서툰 마이클 리는 가벼운 인사로 대신했다. 양준모는 “‘서편제’를 통해 자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중장년층 관객은 공연 후 저와 악수를 하며 꼭 두 손으로 포개 잡으시더라고요. 유봉을 이해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동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누나 송화와 자신에게 득음을 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정작 동호가 하고픈 음악 장르는 록과 같은 서양음악이다. 결국 동호는 오디션에 참가해 ‘프라우드 메리’ 등과 같은 팝송을 부른다. 그리고 악단을 따라 아버지를 등진다.

마이클 리가 느리지만 또렷하게 얘기했다.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시야가 좋지 않아요. 그렇지만 관객의 기운을 느낍니다. 제가 판소리와 록 음악을 할 때 관객의 감정 변화가 느껴져요. 자식이 판소리를 하든, 록을 하던 서운함을 숨기고 늘 응원하시는 거죠. 제 아들 둘이 제 뜻을 어기고 그러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무대에서 ‘춘향가’ 중 ‘사랑가’, 단가 ‘사철가’ 등 우리 소리를 한다. 뮤지컬 무대에서 우리 소리가 다뤄지는 것은 흔치 않다. “송화 역의 국악인 이자람 선생과 서편제 소리꾼 이승희 선생이 지도해 줬다”고 말했다.

“마이클 형은 판소리가 됐건, 단가가 됐건 노래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가수이기도 하다”고 ‘어린 아버지’ 양준모가 말했다. “형이 미국에서 자랐어도 단박에 우리 소리를 익힐 만큼 DNA가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준모의 성량은 이 친구가 왜 정상급 뮤지컬 배우인지 확인시켜 준다”고 받았다. 1995년 데뷔한 마이클의 대표작은 ‘미스 사이공’, 99년 데뷔한 양준모는 ‘지킬 앤 하이드’ 등. 공연은 다음달 11일까지 이어진다(070-7124-1740).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