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이동훈] 아이들에게 바치는 참회록
입력 2014-04-24 02:35
어른 동화 ‘어린왕자’ 첫머리에 나오는 보아뱀 이야기는 보이는 것만 보는 어른들의 편견을 고발한다. 6살짜리 어린이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서 어른들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어른들은 중절모자만을 볼 뿐이었다. 실망한 어린이는 화가의 꿈을 접는다. 훗날 비행사가 된 아이는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한 사하라 사막에서 소행성 B612호에서 온 어린왕자를 만난다. 양 한 마리만 그려 달라는 어린왕자의 요구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느덧 자신도 어린시절 보아뱀 그림을 알아보지 못했던 고지식한 어른이 됐음을 한탄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접하면서 우리 어른들이 어린왕자가 어느 별에서 봤다는, 늘 덧셈만 하느라 바쁜 검붉은 얼굴의 신사처럼 행동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어른들이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를 좇아 욕망의 덧셈만 한 결과가 세월호 침몰로 이어진 건 아닌지.
어른들의 욕심이 빚은 참사
어른들이 아이들을 배 안에 버리고 도망쳤다는 뉴스가 전 세계 망신거리가 되자 일부 언론들은 버릇처럼 한국의 브랜드 가치 손상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니 하는 경제 용어를 들이댄다. 우리는 그렇게 경제적인 잣대로 길들여져 왔는지 모른다.
정부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가 경사가 있을 때마다 브랜드 가치를 들먹였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유치하자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9위인 국가브랜드 가치 순위가 2∼3단계 뛰고 24조원의 경제효과를 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지난달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2’ 국내 촬영을 놓고 당국자들이 쏟아낸 자화자찬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입하고 있음을 드러낸 또 하나의 사례다. 한국관광공사 등은 블록버스터 촬영으로 4000억원의 홍보효과, 2조원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한강의 기적’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가꾼 ‘한강 르네상스’로 자랑스러운 서울의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음을 기꺼워했을 것이다.
어벤져스 촬영팀이 돌아간 뒤 며칠 되지 않아 정부 당국자들이 좋아하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세월호와 함께 무참히 침몰했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수학여행 추억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까지 1시간도 안 걸리는 ‘빠른 비행기’가 아닌 13시간30분이나 걸리는 ‘느린 배’를 택했다. 솔직히 필자도 사고 직후 짧은 2박3일을 배 안에서 지내면 제주도 관광은 언제 하느냐, 비행기를 탔으면 사고를 피했을 것 아니냐고 어른만의 셈법을 얘기했다.
탐욕의 덧셈 반복해선 안 돼
아이들의 셈법은 적재 규정을 어기고, 돈 되는 화물을 마구 쌓아 놓은 어른들만의 셈법에 깊고 차가운 바닷물에 잠기고 말았다. 아이들이 잘못한 것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의 세계적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한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는 빠른 경제성장에만 집착하며 ‘내실’을 소홀히 해온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단기간의 놀랄 만한 성장을 전매특허처럼 삼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허점이 드러났다”며 “고속 성장이 한국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 질문에 ‘never’라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새 출발이 된다. 골프와 쇼핑을 자제하고 반성하는 척하며 세월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탐욕의 덧셈을 반복하려 하지 말자.
1주일 뒤면 가정의 달이다. 학원, 학교에서 지친 표정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와락 껴안아주자. 뜨거운 포옹만으로도 아이들은 안다. 어린왕자처럼 어른들도 비로소 보아뱀을 보기 시작했음을. 아이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기 시작했음을.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