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매뉴얼 새로 만들기보다 실천이 우선이다
입력 2014-04-24 02:31
기존의 3000여개부터 제대로 점검하라
세월호 침몰사고 늑장 대응과 부처 간 혼선으로 피해를 키운 정부가 선박사고 후속대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이대로만 하면 우리나라에 세월호 침몰사고 같은 후진국형 대형 재난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것마냥 요란스럽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대형 사고 현장에서 맞춤형으로 적용하는 실행 매뉴얼을 작성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서 장관은 “사고 후 최초 30분 안에 어떤 식으로 현장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최대한 구조작업에 힘을 쏟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으로 답답하다. 사고가 나고 인명피해가 커진 건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다. 있는 매뉴얼대로만 했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고, 사고가 발생했어도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끔직한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매뉴얼, 시스템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다. 오히려 매뉴얼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정도인데 말이다. 이미 정부 내에는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25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 200개, 각 부처의 현장조치 매뉴얼 3269개가 존재한다.
문제의 본질은 재난관리제도에 있는 게 아니고 만들어놓은 매뉴얼조차 제대로 적용하고 운영하지 못하는 한심한 정부의 역량에 있다. 책상에서 제도만 만들 줄 알았지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적용하고 운영할까에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사고가 나면 그때마다 사후약방문 식으로 후속대책을 마련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그 매뉴얼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소홀했다. 그 결과가 지금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정부 모습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민방위훈련을 한다. 민방위훈련이 뭔가. 정부와 모든 국민이 적의 침공이나 대형 재난·사고에 대비해서 하는 대규모 비상훈련이다. 1972년부터 시작됐으니 40년이 넘었다. 세월호 침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국가적 재난을 가상하고 치르는 훈련임에도 세월호 사고 앞에서 혼선을 거듭하는 정부를 보면 훈련이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때우기 식으로 이뤄졌는지 쉽사리 짐작이 간다. 이 훈련만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사고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미숙하게 대응하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간 부문도 마찬가지다. 검찰 수사 결과 세월호를 운항하는 청해진해운은 비상훈련을 거의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매뉴얼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으나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바빴다. 지난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승객 구출에 몸을 던진 아시아나 승무원들의 살신성인 자세와 비교된다. 이는 평상시 훈련의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예방에 힘쓴다 해도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제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와 공무원, 국민들의 자세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