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16) 협동경제사회를 향한 한국Y의 꿈
입력 2014-04-24 03:36
따뜻한 생산·착한 소비… 세상을 바꾼다
‘구리남양주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글자 수가 20자나 되는 이 단체는 이름만큼이나 특별하다. 지난해 11월 구리YMCA(구리Y)와 지역시민단체들이 손을 맞잡고 창립한 의료복지협동조합으로 이달 초 현재 조합원 562명에 출자금 1억2043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협동조합은 법적 절차를 마무리해 올가을쯤 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의료복지협동조합 설립에 앞장서고 있는 구리Y는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경제운동’ 실험을 진행 중이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 ‘맛들식품’과 재활용처리업체 ‘에코그린’, 청소용역 업체 ‘맑은누리’, 간병업체 ‘온케어구리’ 등 7개에 달한다. 이들 업체는 자립경영이 쉽지 않던 초창기 시절부터 자활공동체 활동에 초점을 두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이들 사회적기업 참여자들은 도움을 받는 ‘수혜자’에서 지역사회 ‘리더’로 발돋움하고 있다.
사회적기업·협동조합 설립 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구리Y 이정희 사무총장은 23일 “사회적기업과 지역협동조합을 촘촘하게 연결된 생태계처럼 엮어나가고 싶다”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영역에 스스로의 힘으로 커 가는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협동조합 시대가 오고 있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지 1년4개월여 만에 무려 4000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최근 서울시는 2030년까지 사회적 경제 일자리 비율을 현재 1.6%에서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협동조합 설립을 돕는 다양한 중간지원체계도 만들어졌고 협동조합과 관련된 출판·교육도 잇따르면서 한국Y의 협동경제사회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Y의 협동경제사회운동은 1970년대 한국Y의 사회개발운동에서 중요한 취지를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Y는 박정희식 경제 개발도 필요하지만, 인간이 주체가 되는 사회개발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로운 사회질서 창조를 위한 시민의식 개발, 소외계층을 향한 생활문화 개선, 사회교육 강화라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사회개발운동의 흐름은 1990년대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되자’는 취지의 ‘등대 생협’ 운동으로 발전했다. 자치와 나눔의 따뜻한 생활공동체 운동을 지향한 등대 생협은 유기농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를 잇는 소비자 생협 운동의 첫걸음이었다.
부천Y에서 시작된 등대 생협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주요 지역에 생협이 들어서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Y의 협동경제사회운동은 한 차례 방향을 틀었다. 사회적 빈곤층의 자립을 돕는 자활운동에 나선 것. 자립적인 경제기반 조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다.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신천연합병원 1층에 있는 ‘카페 티모르’.
한국Y가 펼치고 있는 사회적경제운동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6명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바리스타(커피제조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의 밑거름을 뿌려준 곳이 바로 시흥Y다. 2011년부터 지역사회 드림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 청소년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Y는 이 밖에도 도시와 농촌을 잇는 ‘생명의 고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 활동으로 로컬 푸드 운동과 도시농부 육성 운동, 도농 직거래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을 ‘착한소비 운동’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해외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21세기 들어 최초의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한 동티모르를 돕기 위해 2005년부터 펼치고 있는 한국Y의 공정무역 커피 사업이 대표적이다. 동티모르 현지에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현지인의 자립과 자치를 돕고 있다.
1970년대 한국Y의 사회개발운동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협동경제사회운동의 흐름은 몇 가지 키워드로 연결된다. ‘자치’와 ‘협동’, ‘지속 가능성’ 그리고 ‘지역사회’다. 삶의 공간인 지역사회가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치와 협동의 원리로 운영되는 사회경제적 관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쟁과 효율이 강조되는 세계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경제적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는 과연 행복할까. Y활동가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또한 모두가 한길을 걷기보다는 여러 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할 때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을 원점에서 재구성하기보다는 경쟁과 효율, 자치와 협동의 가치가 함께 논의될 수 있는 사회, 구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이 생겨나는 사회다. 경제적 가치만을 따지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은 이미 사회적 경제가 아니다. 함께 배우고 훈련하는 교육이 핵심이며 협동조합 간 협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말처럼 사람의 향기가 나는 경제운동, 온기가 흐르는 착한 생산·착한 소비운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그려본다. Y가 꿈꾸는 협동경제사회의 비전이다.
이필구 정책사업국장 <한국YMCA전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