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15) 송경애 S.M. C&C(기업체 전문 여행그룹) 사장
입력 2014-04-24 03:41
“감사를 알게 되자 비로소 ‘인생 여행’에 행복이 찾아왔다”
세월이 비켜간 듯한 수려한 얼굴. 마른 체형에 긴 다리. 20, 30대로 착각할 만한 외모다. 21일 만난 송경애(53) S.M. C&C 사장의 첫인상이다.
하지만 화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는 일에 있어 고지식할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거래처의 부당한 요구나 술자리, 골프 등 접대를 거절할 뿐 아니라 저녁약속조차 잡지 않는다.
이러한 성향은 일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명품 대신 대학시절 입었던 옷을 즐겨 입는다. 외모 관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이를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는 데 아낌없이 쓴다.
혈혈단신으로 국내 제일의 기업체 전문 여행사를 일구고도 정작 본인에겐 인색한 그를 이날 서울 중구 무교로의 회사에서 만났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다
잘난 외모가 인생에 불이익을 줄 수 있을까. 송 사장의 경우는 확실히 그랬다. 15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서툰 영어 실력을 들키기 싫어 학교 친구들의 질문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주먹질을 자주 하던 한 선배의 여자친구가 송 사장이라는 것이다.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던 그 선배는 팔에 ‘경애’란 문신을 새기고 송 사장 곁에 오는 학생들을 위협했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졌고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그를 심하게 나무랐다.
억울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학 간 학교에서도 한 선배가 ‘만나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행실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그는 학창시절 내내 공부에만 매달려야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의 이화여대로 진학했다. 이민 초기 호된 신고식을 치러 고향이 그리웠던 데다 부모의 염려 섞인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졸업 후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딸이 걱정됐던 아버지는 혼처를 정해 25세 되던 해 결혼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에겐 스스로 삶을 개척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송 사장은 1986년 아버지가 출장 간 틈을 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홀로서기를 외치고 한국에 왔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일자리를 구하던 중 지인에게 신라호텔에서 외국인 VIP 코디네이터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미국 호텔에서 일한 경험으로 단번에 붙었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외국인 전문 여행사를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위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생경한 사업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는 그를 무모하다며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외국인 전문 여행사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를 세운 87년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자율화가 되기 전이라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턱없이 부족했고요. 제가 하면 적격이다 싶었죠. 그렇지만 ‘젊은 여자가 무슨 사업이냐’는 남녀차별적 시선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87년 인터컨티넨탈여행사를 차렸습니다.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게 자립심 강한 제 성향에 더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긍정하니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26세 여사장은 명함을 들고 무작정 이태원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마주치는 외국인마다 명함을 돌렸다. 연고도 인맥도 없었던 송 사장은 구두굽이 닿도록 외국인 교회와 학교, 김포공항 등 외국인 밀집지역을 찾았다.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회사 설립 2년6개월 만인 90년 100만 달러의 항공권을 팔았다. 이는 창업 당시 그가 세운 최초의 목표였다. 이에 자극 받은 송 사장은 낮엔 영업을 하고 자정이 넘어서까지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회사를 키워나갔다. 96년 이후 매년 10∼20%의 성장을 지속한 회사는 2006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고 2007년 온라인 여행사인 투어익스프레스를 인수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회사의 거듭된 성장에도 송 사장은 행복하지 않았다. 완벽주의자이던 그에게 직원들이 가져오는 성과는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밤늦게까지 일한 뒤 체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예민한 성격에 만성피로가 겹친 탓이었다. 이랬던 그가 긍정적 태도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건 신앙과 남편의 조언 덕분이다. 90년 결혼 이후 남편과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전 그동안 제가 잘나고 열심히 해서 사업이 잘되는 줄 알았어요.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 믿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성과를 남과 비교하니 우울해지고 또 더 나은 목표를 갈구하게 돼요. 나이 쉰 전후로 절실히 얻은 깨달음은 ‘이건 내가 찾는 성공이 아니다’란 것이었죠.”
성공에 대한 관점이 바뀌자 송 사장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을 그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봤다. 받은 것에 감사하니 불우한 이웃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8년 어린이재단 이사를 시작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나눔에 나섰다.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 약정해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첫 여성 회원으로 등록됐다. 또 생일, 결혼기념일 등 기념일 숫자대로 기부하는 ‘기부의 생활화’를 실천한 공로로 2011년 포브스가 선정한 기부 영웅에 선정됐다. 2013년엔 ‘제34회 김만덕상’ 경제인 부문을 수상했다.
송 사장은 후배들도 자신처럼 행복을 찾는 기업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자존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날 보냈는지 알 때 목표 달성과 성공이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매사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제 존재 이유이자 행복이지요.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알고 세상에 공헌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송경애 사장
△1961년 출생 △1984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졸업 △1987년 인터컨티넨탈여행사(SM C&C BT&I 전신) 창립 △2010년 미 제14회 여성경제인의 날 모범여성기업인상 대통령 표창 △2010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1년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2011년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2013년 제34회 ‘김만덕상’ 경제인부문 수상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