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동승자 구호 안해 숨지게 했다면 유기치사죄”
입력 2014-04-23 03:38
세월호 사고 직후 승객들을 버리고 배를 떠난 혐의로 선장 이준석(69)씨가 구속된 가운데, 운전자가 자신의 차에 타고 있다가 사고를 당한 동승자를 구하지 않아 숨지게 했다면 유기치사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임모(56)씨는 지난해 2월 자신의 자동차 조수석에 동업자 김모(54)씨를 태우고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중 말다툼을 벌였다. 김씨는 시속 90㎞로 운전하던 임씨가 소주를 꺼내 한두 모금 마시자 ‘내리겠다’고 말했고, 임씨는 속도를 줄였다. 김씨는 차량 속도가 40㎞로 줄어들자 차에서 뛰어내렸고, 도로에 떨어져 받은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임씨는 아무 조치 없이 그대로 차를 몰아 현장을 떠났고, 김씨는 1분30초 후 뒤따라오던 승용차에 치어 숨졌다.
검찰은 임씨에게 살인죄와 감금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1심은 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씨가 김씨를 밀어 떨어뜨렸거나 억지로 차에 감금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22일 “임씨가 김씨를 구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임씨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유기치사죄는 질병이나 사고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도울 의무가 있는 사람이 그를 방치했을 경우 적용된다.
재판부는 임씨의 과실로 김씨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더라도 임씨의 구호 의무는 유효하다고 봤다. 도로교통법에 의해 동승자가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자에게 조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임씨가 자신의 차에 탑승했던 김씨를 구해야 했다고 봤다. 여객선 선장은 선원법에 따라 승객들을 구호할 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 선장 이씨에게 유기치사죄가 적용될 경우 법원은 최고 징역 4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