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린 보스턴… 마치지 못한 결승선 넘다

입력 2014-04-23 04:02

1년 전 참극으로 끝난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21일(현지시간) 다시 열렸다. 폭탄 테러의 기억이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남아 있지만 참가자와 관람객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적극적인 동참으로 함께 두려움에 맞서고 서로 위로하자는 공감대가 이들을 상흔의 현장으로 끌어당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참가자들은 세월호 침몰 희생자를 기리는 뜻으로 검은색 팔찌를 두르고 뛰었다.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보다 9000명 이상 늘어난 3만5755명이 선수로 참가했다. 95개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관람객은 지난해의 갑절에 가까운 100만명으로 추산됐다.

오후 2시49분 결승지점에는 지난해 대회에 참가했다가 폭발로 다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4월 15일 환호 대신 비명으로 뒤덮였던 시간과 장소다. 당시 완주하지 못하고 쓰러졌던 이들은 올해 대회에 출전한 사람들과 함께 결승선을 넘었다. 관람객은 숙연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댄 머큐리오는 “올해 대회에 다시 참가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상처를 딛고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완주 후 결승선 인근에서 동료 출전자를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

대회는 삼엄한 경비 속에 치러졌다. 대회 시작 전인 오전 6시 보안요원 100여명이 마라톤 전 코스를 답사하며 점검했다. 보스턴과 매사추세츠주 경찰, 연방수사국(FBI) 등에서 3500명 이상의 경찰이 동원됐다. 관람객은 곳곳에 설치된 금속탐지기와 보안견의 검색을 받았다. 짐은 맡기거나 투명한 비닐봉투에 옮겨 담은 뒤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오전 8시45분쯤에는 지난해 테러로 숨진 대회 참가자 3명과 테러범 추격 과정에서 숨진 경찰관 1명, 부상자 수백명을 위한 묵념이 진행됐다.

휴스턴에서 왔다는 데이브 쇼는 “지난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테러에 굴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올해 대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문경·구미 마라톤동호회, 복사꽃마라톤동호회 회원 등 한국인 출전자 60여명은 경기에 나서기 전 출발선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이 모습을 본 외국인 출전자들은 다가와 위로했다. 일부 한국인 참가자는 대회를 마친 뒤 다시 모여 추모 묵념을 했다.

올해로 118회째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미국 독립전쟁을 기념해 매년 4월 세 번째 월요일에 열린다. 이번 대회에서는 1998년 미국으로 귀화한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 멥 케플레지기(38)와 케냐의 리타 젭투(33)가 각각 남녀 우승자가 됐다. 케플레지기는 보스턴 마라톤 역대 미국 남자선수 중 두 번째로 빠른 기록(2시간8분37초)을 냈다. 젭투는 이 대회 여자 신기록(2시간18분57초)을 세웠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