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인간에 대한 예의
입력 2014-04-23 02:28
배가 침몰하는데도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먼저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있음을 들어 성선설을 주장했지만 글쎄다. 벌건 대낮에 두 시간 동안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는데도,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데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민낯을 대하고선 자괴감과 미안함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자식의 생사를 몰라 애끊는 학부모들이 울다 실신하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참사 현장에 인증샷을 찍으러 내려간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행태는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교육부 장관은 세월호에서 구조된 승객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진료하는 의료품과 청진기를 탁자에서 치우고 귀빈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다가 카메라에 찍혔다. 그것도 식음을 전폐한 실종자 가족들과 피해자들이 진도 실내체육관의 차디찬 바닥에 앉아 있던 바로 옆이다.
안전행정부 국장은 세월호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자고 했다가 가족들로부터 “300명을 저 차가운 물 속에 처넣어 놓고 기념촬영을 한다는 당신들이 사람이냐”는 거센 반발을 샀다. 재벌 출신인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후보의 19세 아들은 페이스북에 “(실종자 가족들이)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하잖아. 국민 정서가 굉장히 미개하다.”고 올렸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는 선동꾼이라며 동영상과 사진을 올렸다가 사진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자 사과했다.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얌전히 자리를 지키던 학생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고, 그렇게 차디찬 바다가 삼켜버린 자식들이 내 아이들인 것만 같아 온 나라가 열병을 앓는 중이다. 이들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이러한 경거망동은 안했을 것이다.
한국작가회의가 그제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성명을 내 “세월호 침몰 현장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사라진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라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라. 이것이 살아 있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인간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경배”라고 일갈했다. 울긋불긋 철쭉이 지천으로 널렸어도 핏빛 울음이 생각나 즐길 수 없는 잔인한 4월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