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감사 되려면 회계 익혀야
입력 2014-04-23 02:27
낙하산 인사 해소는 결핵 퇴치만큼 어렵다. 대통령 선거판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후보자마다 근절을 공약하지만 당선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정권 교체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더욱 악화돼 이제는 거의 불감증으로 굳어지고 있다.
장관 등 정무직보다는 공공기관 기관장과 감사가 더 문제다. 기관장의 경우 업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억지로 끼워 맞춰 직무연관성을 둘러대기도 한다. 어느 정권이든 야당의 비난은 가혹하다. 노무현정부 시절 철도공사 사장으로 이철 전 국회의원이 내정되자 당시 야당이던 현 여권에서는 이름에 ‘철’자가 들어가 철도냐며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이철 사장은 노조와 대립각을 세워가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지난 연말 철도파업 국면에서 언행이 약간 어색했지만 재임 기간 중의 업적은 낙하산 논란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최악의 낙하산 사례는 공공기관 감사 자리다. 감사는 원래 회계감사가 기본적 직무다. 업무감사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회계가 주된 임무다.
주요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감사 자리의 서열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다. 공공기관의 장과 감사는 대통령 임명직이고 부사장 등 임원은 주무부처 장관 또는 기관장 발령인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고평가된 감사 자리로 인해 업무의 정상적 흐름이 가로막히고 기관장과의 갈등으로 조직이 엉망으로 망가지기도 한다.
사실 낙하산 문제는 업무 관련 전문성 중심으로 논의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 논공행상이라는 측면이 있더라도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수용돼야 한다. 감사의 경우 회계 관련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기용되는 게 문제다.
공공기관 비리의 대명사로 자리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경우에도 최악의 낙하산 감사가 투입된 이후 비리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명박정부 초기였던 2009년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 및 ‘한나라당 민원실장’을 간판 경력으로 내세운 인사가 감사로 취임했다. 부정 적발이 주된 책무인 감사 자리로는 전문성은 물론 과거 경력을 보아도 부적절한 인사였다. 낙하산 감사는 착지 직후 감사실장을 새로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모두 혀를 찰 정도로 부적절한 사람을 골랐다. 감사실장이 부정 적발은커녕 뇌물을 받아 나눠주는 창구 역할까지 맡다가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낙하산 감사의 개인 비리는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민간기업에서도 부적절한 인사를 감사 또는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는 사례가 많다. 비상임 사외이사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검증이 불충분한 이론에 근거해 상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많은 회사에서 상근감사 폐지를 통한 인건비 절감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성원 전원이 비상임인 경우 심의할 의안이 빠짐없이 상정됐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심의 의안 누락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문제점이 상존한다.
감사위원 중에 회계 전문가가 전혀 없는 회사도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한 법조 인력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법정 다툼에서 감사위원의 회계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적 인맥으로 연결된 전문성 없는 감사위원 때문에 분식회계 관련 민사 및 형사 재판에서 낭패를 맞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감사 또는 감사위원이 되려면 회계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미리 갖춰야 한다. 공공기관 감사의 경우도 회계 전문성을 사전에 검증하고 부족함이 확인되면 몇 개월 동안 집중적 회계 교육을 이수시킨 다음 선임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이만우(고려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