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대책본부만 10여개… 컨트롤타워 무용지물
입력 2014-04-22 03:13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재난관리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자체 관할을 포함해 사고 이후 전국적으로 난립한 대책본부만 10여개에 달했고, 서로 혼선을 빚으며 우왕좌왕했다. 재난관리의 컨트롤타워는 무용지물이었다.
◇안행부 장관이 해수부·국방부 통솔?=재난이 발생했을 때 범정부 차원에서 꾸려지도록 규정돼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도록 돼 있다. 한 장관에게 다른 부처까지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기형적인 재난대응체계가 이번 사고의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사고 직후 관련 부처들은 유기적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는커녕 일단 각자가 사고 관련 대책본부를 꾸리며 혼선을 부채질했다. 서울, 인천, 세종, 목포 그리고 진도 현장에까지 이름도 엇비슷한 본부들이 줄줄이 세워졌다. 세월호 운항 업체인 청해진해운조차 심지어 별도의 발표를 할 정도로 중구난방 브리핑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 안행부와 해양수산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 칸막이 치기에 급급했다. 정부 측 현장 구조 활동의 핵심 주체인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해군이 각각 안행부, 해수부, 국방부의 지휘를 받으면서 협조 체계는 헛돌았다.
정부는 뒤늦게 정홍원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급조하고 구조·수색 주체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기구에 재난 수습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해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던 것이다.
◇‘재난 문외한’ 중대본=박근혜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이전 정부의 행정안전부를 안행부로 개명했다. 재난안전실을 안전관리본부로 확대·개편했고 하부조직으로 안전정책국도 신설했다.
그러나 직제 개편은 허울뿐이었다. 안행부가 ‘상시 운영하고 있다’고 홍보했던 중대본은 첫 사고 신고 이후 53분이 지나서야 가동된 것으로 밝혀졌다. 중대본 총괄조정관을 맡았던 이재율 안전관리본부장은 행정 전문가 출신이다. 사고 발생 직후 중대본 차장으로서 브리핑을 담당했던 이경옥 안행부 2차관은 안전 관련 업무경력이 전무한 지방자치 전문가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해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입히자 노무현정부는 2004년 소방방재청을 발족시켰다. 재난과 관련해 전문성이 높은 소방방재청 인력들은 이후 10년간 재난 상황을 주도적으로 수습했다. 중대본부장은 이번 사고처럼 안행부 장관이 맡았지만 소방방재청장이 중대본 차장을 겸임하며 부족한 전문성을 채워줬다.
그러나 지난 2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침몰사고 같은 ‘사회재난’은 안행부가 맡고, 소방방재청은 ‘자연재해’만 담당하는 것으로 기능이 이원화됐다. 이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자 안행부 2차관이 중대본 차장을 맡아 상황을 관리했다. 안행부와 소방방재청이 기능을 분담할 때 방재청의 전문 인력들을 안행부가 제대로 흡수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난 컨트롤타워 개편 논의…이번엔 제대로=박근혜 대통령은 21일 부처 간 협업 부재를 강하게 질책하면서 중대본보다 더 강력한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본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며 “차제에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안전을 총괄하는 독립기구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사고가 수습 국면으로 들어선 뒤에는 재난 컨트롤타워 개편 논의에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