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호’ 6일 만에→ 5곳 ‘불량’→ ‘시정’ 서류만 보고 통과
입력 2014-04-22 03:59
세월호 안전검사 총체적 부실 의혹
여객선 세월호가 지난 2월 한국선급에서 매년 실시되는 정기 중간검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으나 6일 만에 실시된 특별점검에서 5곳 불량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특별점검을 실시했던 인천해양경찰서는 ‘불량을 시정했다’는 청해진해운의 문서 보고를 받았지만 별도의 재점검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관 기관의 안전진단을 무사히 ‘통과’한 세월호는 지난 16일 476명의 탑승객을 싣고 운항하다 갑자기 침몰해 300여명의 실종·사망자가 발생했다. 안전검사 과정이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선박 검사를 대행하는 한국선급은 지난 2월 10일 전남 여수에서 세월호의 제1종 중간검사를 실시했다. 여객선에 대한 제1종 중간검사는 매년 실시되며, 5년마다 치르는 종합 정기검사 다음으로 중요한 검사다. 배를 도크로 끌어올린 후 수면에 잠겨 보이지 않았던 주요 기관을 포함해 구난시설, 조타시설 등 200여개 항목에 대해 안전검사가 진행된다.
한국선급은 10일 동안의 정밀 검사를 통해 ‘세월호의 선박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정했다.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된 선령 20년의 여객선이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 일본에서 도입한 뒤 넉 달 동안 증축공사를 거쳐 정원 181명, 무게 239t이 늘어난 상태였다.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 복원성이 일부 떨어진 상태였으나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선박 복원성에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침몰 사고 당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구명벌 및 사고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화물 고정 장치도 무사히 검사를 통과했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검사 당시 문제 있는 부분은 회사 측에서 곧바로 수리한 후 다시 검사관들에게 알린다”며 “문제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면 절대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선급은 검사를 모두 마친 뒤 해양수산부에 감정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검사 보고서로 비춰볼 때 세월호 안정성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던 세월호는 6일 뒤인 지난 2월 25일 인천해경 및 관계기관이 실시한 특별점검에서 모두 5곳의 불량을 지적받았다. 안개가 끼는 시기를 대비해 인천해경이 실시한 점검이었다. 지적사항은 수밀문 작동 불량, 객실 내 방화문 상태 불량, 비상조명등 작동 불량, 화재경보기 작동법 숙지상태 불량, 비상발전기 연료유 탱크 레벨 게이지 상태 불량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침몰 당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밀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빠른 침몰의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당시 실시된 특별점검에는 한국선급 측 관계자도 참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취항을 허가한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선박의 입출항을 관리했던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관계자 등 모두 5개 유관 기관이 검사에 참여했다.
인천해경은 특별점검 후 시정 사항이 제대로 고쳐졌는지도 서류상으로만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해진해운은 검사 당시 드러난 지적사항에 대해 1주일 만인 3월 4일 한국해운조합에 ‘불량을 모두 시정했다’는 공문을 보냈다. 해운조합은 이 같은 사실을 해경에 알렸다. 하지만 해경은 이를 재점검하지 않았다. 해경 관계자는 “법적 절차를 따르는 안전검사와 달리 특별점검은 사후 확인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청해진해운은 수밀문 작동 불량 항목에 대해서는 ‘작동 결과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특별점검에서 구명벌 등 구명설비와 조타장치 등은 양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구명벌은 46개 중 1개만 펴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선급 등의 선박 검사를 감시해야 할 해수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퇴직 해수부 관료들이 한국선급 간부로 들어가는 ‘회전문 인사’ 때문에 해수부 측이 한국선급의 검사 방식과 구체적인 내용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선급이 1년에 선박 3000여척에 대한 검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해수부 인력이 이를 감시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선급은 정부 기관을 대행하는 선박 전문검사 인증 기관으로 대형 화물선 및 여객선에 대한 검사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