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문화] 세월호에는 없었던 ‘마도로스 제복의 힘’

입력 2014-04-22 02:25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던 2010년 11월 23일. 해병대 연평부대의 임준영 상병은 자신의 철모가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K-9 자주포로 대응사격을 하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추락사고로 기체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연출됐다. 12명의 승무원 중 착륙 과정에서 실신한 7명을 제외한 5명의 승무원은 매뉴얼대로 300여명의 승객을 대피시키고 마지막으로 기내에서 나와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조국의 안위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임무를 완수한 이들의 공통점은 군복과 승무원복이라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 최대 여객선 참사를 일으킨 세월호의 선장은 어떠했는가? 배가 침몰하는데도 승객을 버려두고 먼저 탈출한 선장은 금색 장신구가 달린 하얀 마도로스복 차림이 아니었다.

제복은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아이콘이자 직무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당연히 제복을 입었을 때의 마음가짐은 사복을 입었을 때와 다르게 마련이다. 세월호 선장이 명예를 상징하는 마도로스복을 입고 있었더라면 일말의 양심도 없이 침몰하는 배에서 그토록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라는 아픈 기억 때문에 군복과 경찰복 등 제복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제복이 명예와 그에 따른 책임의 상징으로 대접받는다. 몇 년 전 뉴질랜드에서 작은 낚싯배를 탔다. 마도로스복을 입은 선장은 구명복을 직접 챙겨주며 배가 전복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일일이 시범을 보였다. 그 설명에만 30분이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연안을 항해하는 여객선의 경우 제복 차림의 선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선장이 반드시 마도로스복을 착용해야 하는 복무규정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작업복 형태의 사복(社服)이나 사복(私服) 차림으론 직업적 긴장감이나 책임감이 이완될 여지가 크다.

세월호 선장의 복장을 두고는 여러 설이 나돈다. 첫 구조선에서 그가 사복 차림으로 내린 것과 관련, 탈출을 위해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도 있었다. 만약 선장이 스스로 제복을 벗었다면 그는 마도로스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바다에 수장시킨 셈이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