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실천하다 하나님께 갑니다”… 국제 기독교 공동체 英 ‘브루더호프’의 삶
입력 2014-04-22 02:14
원충연·아일린씨 부부 이야기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세상의 많은 책들은 “돈 벌고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그동안 못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 실컷 하면서 남은 생애를 즐기다 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나이 드는 내가 좋다’(포이에마)의 저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는 이제부터라도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다 하나님의 품으로 가자고 말한다. 1920년 설립된 국제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를 섬기고 있는 크리스토프 목사의 메시지는 시공을 뛰어넘어 울림이 크다. 책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한 원충연(41), 아일린(32) 부부를 최근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원씨는 크리스토프 목사의 책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뒷전으로 밀려난 노인들은 스스로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 늙음이라는 벅찬 현실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가 쉽지 않지만 누구도 조언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출간이 한국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크리스토프 목사는 책에서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먼저 인정하자고 말한다. 죽음은 물론 두렵지만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해주실 예수님이 계시기에 곁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용기를 주며 격려하자는 것이다.
노년의 사람들이 이때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다. 원씨는 “그 한 사람이 없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외롭게 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은 이미 일할 나이가 지난 노인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귀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작별 인사할 기회를 놓치지 마라’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평화롭게 떠날 수 있다’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소개하며, 노인일수록 치매 환자들을 더 도와주라고 권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아일린씨는 “얼마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0년간 자기 일을 포기했다는 공동체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다”며 “나이 드신 분을 돌보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그렇기 때문에 포기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일원인 치매 할머니 한 분을 여러 사람이 간호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2∼3주 동안 그분을 섬기면서 또 다른 평화를 얻을 수 있었어요. 우리가 그분을 섬겼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섬겨주신 건지 몰라요. 오늘 런던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그가 평생 쉽지 않은 삶을 사셨지만 깊은 평화 속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분을 우리는 그리워하겠지만 하늘의 고향으로 가셨으니 (그 죽음도) 승리이겠죠.” 영국에서도 호스피스 병동 등을 찾아가 이 책을 나눠주고 있는데 책을 통해 노인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위안을 얻었다는 이들이 꽤 많단다.
원씨는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영성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뒤 2004년 ‘브루더호프’ 공동체 미국 지부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영국인 아일린씨와 결혼한 뒤 런던 인근 다벨에 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정착해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이 공동체는 영국 미국 호주로 퍼져나가 10∼300명 사이의 공동체 마을 20여개를 이루고 있다.
수백명이 마을을 이뤄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로 나무로 어린이 가구와 장난감을 제작해 판매한다. 원씨는 반나절은 가구를 만들고, 반나절은 공동체 출판사인 ‘플라우’에서 일한다. 이곳은 그리스도인의 삶, 부모 역할과 교육, 영성 수업은 물론 사회, 가족, 교육 등 사회 이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책들을 펴내고 있다.
공동체 사람들은 매일 모여 찬양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주일에 예배를 드린다. 겉모습이 약간 다를지 몰라도 삶 가운데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똑같다.
“공동체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다 보통 사람들이에요. 실수도 많이 하고 매일 어려움을 겪는 건 똑같아요. 결국 서로 돕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께 생의 경험을 통한 지혜와 조언을 구하며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죠.”
공동체 생활을 통제하는 규율은 거의 없다. 다만 여러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에 갈등을 풀기 위해 필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말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용서를 하는 것이다. 갈등이 생기면 해를 넘기지 않고 당사자를 찾아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용서를 구한 뒤 화해를 이뤄야 한다. “공동체의 일치가 이뤄지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도와주셔서이지, 우리가 잘 해서가 아니에요(웃음).”
그는 공동체에서 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그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인지 계속 찾는 과정을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한국에서 사는 분들 역시 삶의 현장에서 그 뜻을 찾는 과정을 겪고 계시잖아요. 이곳에서나 그곳에서나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면 좋겠습니다.”
런던=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