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위험 관리와 위험 소통
입력 2014-04-22 02:29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재해나 안전사고에 의한 피해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물질과 신기술 보급에 따른 새로운 위험이 잉태되고,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요즘엔 지진이 발생하면 과거와 달리 지진 자체가 아니라 건물이나 교량 파괴의 2차 피해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각종 화학물질과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사고사와 치명적 질병들도 새로운 위험의 사례들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인이 “문명이라는 화산(火山) 위에서 살아간다”면서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로 정의했다. 그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그 부작용과 파괴적 위력도 커져가는 ‘위험의 확장’ 현상을 언급했다. 먼 과거에 인류는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쥐와 같은 동물의 대피 움직임을 보고 대나무 숲으로 피신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 현대에 이르러 위험은 사회 속에 내재화·제도화됐고, 개인은 스스로 위험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했다.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비행기의 사고 및 사망확률은 자동차보다 훨씬 더 낮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동차보다는 비행기를 탈 때 위험을 더 느낀다. 객관적 위험과 주관적 위험이 다른 것이다. 스키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관적 위험도는 낮은 편이다. 반면 원자력 발전소나 항공여행은 위험의 통제 가능성이 없는 데다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규모로 죽는다. 더 발달한 문명의 이기일수록 그 위험 관리에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는 요소가 많아지고, 그런 기술에 의존도가 높아진 사회가 바로 위험사회인 것이다.
위험사회의 객관적 위험은 평소의 위험 관리로, 주관적 위험은 위험 소통으로 대처해야 한다. 세월호는 이런 위험 관리와 위험 소통에 모두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선박 증축에 따른 안전성, 적재정량 준수, 선원과 승객에 대한 적절한 안전교육 실시 여부가 모두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특히 승객이 여행 중 어떤 종류와 정도의 위험에 빠질 수 있고,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생명을 지킬 수 있는지를 인식시키는 한편 모의 훈련을 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꼭 102년 전 북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태닉호와 지금의 세월호는 위험 관리에는 공히 실패했지만, 세월호는 위험 소통에서 타이태닉호에 훨씬 못 미쳤다. 특히 사고 직후 세월호 선장과 대부분 선원들은 소통을 아예 포기했으니 분노할 따름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