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 칼럼] 보수에 갇힌 야당, 출구가 안 보인다

입력 2014-04-22 02:29


“멀리 보고 변신하면서 여왕벌을 길러 국민 기대와 관심 모아야”

“요즘만큼 야당하기 좋은 때가 언제 있었노?”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당이 된 민자당의 김영삼(YS) 대표가 김대중(DJ) 평민당 총재를 겨냥하여 했던 말이다. 자신들은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걸었지만 지금은 그 같은 야당 탄압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YS의 말대로 문민정부 이후 야당이 대여 투쟁을 하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시대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YS와 DJ가 야당을 이끌던 시대보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하기에 더 좋은 시절이라고만도 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두 김씨가 야당하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길을 걸어왔음은 부인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 목표는 단순 명확했다. ‘민주화’ 그 하나로 족했다. 많은 국민들도 야당에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반면에 지금의 야당은? 투쟁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 정권과의 차별화를 지렛대로 국민에게 집권을 호소해야 하나 그 차별화 소재가 마땅치 않다. 지금처럼 대여 투쟁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야당만큼 하기가 정신적으로 힘든 노릇도 드물다.

우선 국민 성향의 전반적인 보수화로 진보 쪽인 야당은 입지가 좁아졌다.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진보 정권에 실망한 많은 국민들이 보수 성향으로 회귀하여 잇달아 이명박, 박근혜의 보수정권을 선택했다. 메이저 언론들도 대부분 보수 성향이다. 북한 또한 핵무기와 무인기 등의 도발로 긴장을 조성, 남한의 보수화에 한몫 거들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여서 진보 진영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복지 정책 역시 이념의 경계가 무너지는 데다 현실적으로 곳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 여당에 밀릴 수밖에 없다.

새 정치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던 안철수 의원 쪽과의 합당도 반짝 특수에 그쳤다. 안 의원의 창당 포기, 기초단체 무공천 의지 좌절 등으로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크게 낮아졌다.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한국 정치는 아직까지도 명망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 명망가가 다음에 대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냐 여부에 따라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의 정당에 대한 기대와 지지도가 달라진다. 집권까지를 포함하여 안 의원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짐에 따라 야당에 대한 지지도도 동반 하락한다. 그 이유뿐만은 아니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긋는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객관적 여건 때문에 야당이 외연을 넓힌다는 목표 아래 노선을 우클릭하고 있다. 안보를 강조하고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는 정당이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수 성향의 국민들이 야당의 이러한 변신 노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정권과의 차별화만 더욱 어렵게 만들고, 그래서 집토끼마저 놓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처럼 척박한 상황에서 야당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정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이 필요하다는 국민의 의식과 동정심, 생길지도 모를 보수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싫증, 그리고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 노무현과 안철수 돌풍 같은 이변이 일어나는 일 정도일 것이다. 굳이 더 보탠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과거 흔히 그래왔듯이 상대의 결정적 실책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야당은 짧게는 차기 대선까지, 길게는 차차기 대선까지 멀리 보고 정책 정당으로의 변신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면서 국민을 설득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창조를 위한 파괴’ 차원에서 모두 헐고 제로베이스에서 재건축을 하는 것도 변신의 한 방법일 터이다. 또 빠른 시일 내에 불임정당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여왕벌을 키워내야 한다. 그 여왕벌 자리를 놓고 군웅이 쟁패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정치의 고전적 흥행 기법이기도 하다.

백화종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