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들끓는 분노 무엇으로 풀까
입력 2014-04-22 02:37
선장에게 집중되는 공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69세 이준석 선장이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됐다. 그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저질렀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가 개인의 잘못을 나무라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모든 인간에게는 죄성과 이기심이 있다. 손자뻘 되는 그 많은 어린 학생들을 놔두고 늙은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혼자 배에서 탈출한 그에게서 이런 죄성과 이기심을 본다. 그는 조류가 빠르고, 수온도 낮고, 구조선이 없어서 승객들을 선실 안에 있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하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한 것은 선장으로서 문제가 있다. 휴가를 간 선장 대신 나온 비정규직 대체선장이라 해도 너무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였다.
말 잘 듣는 아이들은 안내방송을 충실히 따르다 배에 갇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주변의 민간어선들이 구조 연락을 받고 10여분 만에 사고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배에서 탈출시켰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 말 들으면 고스란히 떼죽음을 당한다’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고 한다.
시스템 개혁으로 승화해야
그러나 이 선장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먼저 탈출하는 비겁함이 모두에게 잠재돼 있다. 모든 국가와 사회에는 이 선장 이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대응과 관리를 잘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할 일이다. 선진국일수록 그렇다. 각종 범죄와 테러, 사고를 예방하거나,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초동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해경은 승객을 탈출시키도록 강하게 지시했어야 한다. 빨리 승객들을 탈출시키지 않고 뭐하고 있느냐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다그치고 확인했어야 했다.
배가 넘어간다고 처음 신고한 세월호 승무원과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 관계자의 목소리는 민원 상담을 하는 것처럼 태연하고 느긋했다. 2012년 이탈리아 여객선이 침몰할 때 배에서 빠져나온 선장에게 호통친 구조대장과 비교된다.
해경이 운영하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세월호가 사고 난 지 18분이 지나서야 지금 침몰중이냐고 물었다. 해경은 31분 동안 교신을 하면서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이 최종 판단을 해서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떠넘겼다.
해경의 ‘연안 해상교통관제 운영 및 관리에 관한 규칙’에는 1단계 관찰 확인(모니터), 2단계 정보 제공, 3단계 조언·권고, 4단계 지시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모니터도 하지 않고 지시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해경과 세월호가 골든타임을 허비할 동안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죽음을 생각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관계 기관이 총동원되고 있는데도 구조와 수색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실종자와 구조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재난이나 사고가 나면 국민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지나면 사람들은 이번 참사를 또 잊기 시작할 것이다. 당장 한두 달 뒤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월드컵 열기에 빠져들 것이다.
지금 칠순이 다 된 노인네에게 끓는 냄비처럼 국민적 울분을 쏟아 붓는 데 그칠 것인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더 큰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재난대응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바꾸고 정부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초점을 모아야 한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