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구조는 팽개치고… 선원들, 탈출 쉬운 선교에 집결해 있었다

입력 2014-04-21 04:11


무책임하고 비겁한 선원들이었다. 배가 침몰하던 절체절명의 순간 세월호 선원 상당수는 선박의 맨 꼭대기인 선교(브리지)에 모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해야 하는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들의 탈출을 먼저 꾀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승객 대피 대신 선박 꼭대기로 모인 선원들=세월호는 지난 16일 오전 9시17분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면서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선원도 라이프 재킷(구명복)을 입고 대기하라고 했다”며 “선원들도 브리지에 모여 거동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했다. 진도연안VTS가 “현재 침수 상태가 어떠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브리지는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등이 배를 조종하는 곳으로 5층 뱃머리에 있다.

해운법에 따라 마련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선장은 ‘인명의 안전 확보를 위한 최우선적인 조치를 취한 후 사고확대 방지 및 여객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필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나머지 선원들은 선장의 지휘에 따라 비상탈출구 위치와 대피방법에 대한 안내방송을 하고 담당 구역의 승객 대피를 안내해야 한다. 세월호는 이미 그 3분 전 교신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선원들은 할당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탈출이 용이한 브리지에 집결해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객실에 있을 때 선원들은 익숙한 통로를 통해 안전지대로 피신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고 발생시 ‘잠시 담배를 피우러’ 조타실을 비웠던 선장 이준석(69·구속)씨는 이후에도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허비하다 앞장서서 탈출해 버렸다.

결국 이씨를 비롯해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 등 선박직 15명 전원이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했거나 실종된 승무원은 주로 승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무장·사무원들이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선장과 탈출 승무원들의 사고 대처 과정을 중점 수사하고 있다. 합수부는 이날 진도연안VTS 교신 내용을 근거로 승무원들을 강하게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러나는 선장의 무능과 거짓말=세월호는 당초 오전 8시55분 초단파무선통신(VHF) 12번 채널로 제주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조난사실을 먼저 알렸다. 해경과 인근 선박에 모두 전파되는 비상채널 16번을 사용하지 않았다. 16번 채널은 공통 대기채널이어서 통신 수화기를 들기만 해도 16번으로 이어지는데 세월호는 사고 지점에서 80㎞나 떨어진 제주VTS와 교신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인근 선박에 조난신호가 보내지는 비상신호용 ‘디스트레스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세월호와 진도연안VTS와의 첫 교신은 이로부터 11분쯤 뒤에야 이뤄졌다. 항해사와 진도연안VTS 간의 교신 내용을 보면 이씨는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교신에는 세월호 측이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반복해서 묻기만 하고 퇴선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씨가 지난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면서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한 것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씨는 또 선내 방송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구조선이 도착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주장했지만, 진도연안VTS는 9시33분에 “부근에 상선 2척이 있다. 거기다가 오더를 주라”고 지시했다.

세월호는 진도연안VTS에 허위 보고도 했다. VTS가 9시23분에 승객 탈출 준비를 지시하자 세월호는 “(선내)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그러나 “객실에 머물라”는 방송은 오전 10시까지 계속됐다고 생존자들을 증언하고 있다.

◇승선 인원도 파악 못했다=세월호 항해사는 오전 9시13분 ‘현재 승선원은 몇 명입니까’라는 진도연안 VTS의 질문에 “네 450명입니다”라고 했다가 곧바로 “약 500명 정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세월호 승무원은 구해야 할 정확한 승선인원을 알지 못했음이 확인된 셈이다. 아직도 세월호의 총 승선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청해진해운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전체 승선자 수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바꿔 왔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전 477명이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459명, 다시 475명으로 변경됐다. 이틀 뒤인 18일에는 선사가 작성한 명부를 기초로 승선자 수를 476명으로 바꿨다. 청해진해운의 관계자는 “현재 무임승차한 승객이 더 없다고는 말 못한다”며 “하지만 있어도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