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들 이번엔 자살보험금 논란

입력 2014-04-21 02:30


‘자살이 재해사고인가.’ 생명보험사들이 수년간 유지해 왔던 ‘재해사망특약’의 약관 내용을 둘러싸고 자살의 재해사고 인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부분 생보사들이 2010년 4월 표준약관이 개정되기 전까지 약관에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준다’고 명시해놓고 이를 지급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생보사들은 당시 약관은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를 인정할 경우 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고 해명하지만 잘못된 약관이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 등도 있어 금융 당국의 결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ING생명 종합감사 과정에서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한 90여건에 대해 총 200억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된 상품들은 ‘특약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한 경우’에 대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준다는 약관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와 무관하게 일반 사망보험금만 지급됐다. 보통 재해사망보험금은 일반 사망보험금보다 2∼3배 더 많다.

이런 상황은 ING생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방식으로 미지급된 보험금이 생보업계 전체로 볼 때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20일 “대부분 생보사들이 같은 표준약관을 인용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해당 약관은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을 통해 ‘자살한 경우 일반 사망보험금 또는 사망시까지 적립된 적립금만 지급한다’고 수정됐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생보사들이 종신보험 표준약관을 만들 때 실수로 잘못 설계된 내용”이라면서 “자살이 재해가 아니라는 것은 소비자들도 알기 때문에 그동안 큰 논란이 안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잘못된 약관이더라도 이를 오랜 시간 방치한 보험사들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또 보험계약자 보호 차원에서도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 부분이 인정된 대법원 판례도 있다.

금융 당국도 자살에 대한 재해보험금 지급이 인정되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관련 민원이 제기되면 분쟁 조정을 통해 보상하는 식으로 건별 대응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번에는 어떻게든 기준을 만들긴 할 것”이라면서 “약관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금액이 큰 재해보험금이 인정되면 말기암 환자 등의 자살 충동을 높일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