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스승
입력 2014-04-21 02:34
평생 스승 복이 많아 실력과 천품을 아우른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언제 어느 때든 곧바로 떠오르는 나의 스승님들.
‘옳고 떳떳한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는 베토벤의 말을 삼국유사 책에 써서 선물해주신 J선생님. 파우스트 등 번역서가 수십 권인 선생님은 어쩌다 이 불민한 제자의 소설책이 나올라치면 당장 서점에서 수십 권을 사신다. 제자의 책이라며 많은 이에게 선물하시는 것이다. 그런 때면 고아한 선생님께서 사재기 오명을 쓰실까 봐 제자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런 스승이 세상에 또 계시다면 알려 달라.
대학에서는 우리 소설의 큰 산맥인 H선생님과 시인 C선생님, 문학평론가 K선생님, 영문과 P선생님을 만났다. 문학은 물론이고 자존으로 꼿꼿한 모습을 보여주신 스승들이시다. 대학원에서는 국보 Y선생님의 열강에 감명 받았다. 졸업학기에 선생님은 감기가 심하셨다. 그런데도 평상시와 같이 단 한 명 학생을 상대로 수천수만 청중을 놓고 강연하듯 하셨다. 음성을 높이며 춤도 덩더꿍 추며 매번 신명 가득한 강의였다. 그러다 보면 콧물이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해 겨울 끝내 영면하신 선생님. 깊어진 감기가 다른 병을 불렀을 터였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 멀지 않다. 세상은 사표(師表)가 흔치 않다며 한탄하지만 그렇지 않다. 옛 말씀에 세 사람이 걸어도 그중에 스승이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어찌 셋이 걸을 때만 그러랴. 둘이 걸으면 당신이 나의 스승이다. 이번 진도해역에서의 여객선 세월호 참변에서도 참스승을 본다.
학생들을 끝까지 챙기다 스스로는 산화한, 아직 솜털 보송한 세월호의 스물두 살 박지영 승무원, 스승이시다. 침몰하는 뱃속에서 마지막까지 난간에 매달려 학생들을 대피시킨 남윤철 교사, 스승이시다. 살신성인의 숭고함을 보여주신 분들 모두 스승이시다. 수십 명 목숨을 구하다 자신도 간신히 빠져나와서는 더 많이 구하지 못한 사실에 괴로워하는 의인들, 스승이시다. 생계를 뒤로 하고 승객들을 구한 근처 어선의 어부님들, 스승이시다. 개인의 일을 미루고 온 민간 잠수사 분들, 스승이시다. 구명대를 양보한 분들, 내 목숨의 위기에도 어린애를 들쳐 안고 나온 어린 학생들, 스승이시다.
가신 스승의 명복과 살아계신 스승의 앞날이 복되고 건강하기를 손 모아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가신 모든 분들 편히 쉬소서.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