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본만 갖췄어도 이 참담함은 없었을 것을

입력 2014-04-21 02:33

직업의식·감독책임·판단·종합시스템 부재가 부른 참화

전남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졌다. 사망·실종자 등 인명 피해 규모가 워낙 큰 데다 나라 전체가 너무 부실(不實)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 안전과 관련해 최소한의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은 데 대한 실망감과 답답함, 분노가 깔려 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정부와 여객선 선사의 안전 불감증이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건조된 지 20년이 지난 선박이다. 한국해운조합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선령 20년 이상인 배가 67척으로 30.9%에 해당한다. 2009년에 규정을 고쳐 여객선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함에 따라 수년 사이 노후선박이 크게 늘었다. 낡은 선박일수록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월호 사고 원인도 선박 노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객선 안전 점검은 그야말로 수박 겉 핥기 식이다. 한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당국의 한 척당 평균 점검시간은 13분밖에 안 된다. 해양경찰청 등이 두 달 전 세월호에 대해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할 때 ‘선내 비상훈련 실시 여부’ 분야에서 ‘양호’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이 사고 직후 도망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을 보면 위기대응 매뉴얼은 형식적이었을 뿐 평소 점검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월호가 속한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선원들의 안전교육 등 연수비로 불과 54만원을 지출했다. 안전점검과 안전교육이 이토록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사고가 안 날 수가 있나. 거기다 사고 발생시 승객들의 대처요령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니 공무원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사고 발생 후 허둥대는 정부의 모습은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범정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이번 사고 수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도권을 쥔 안전행정부가 초기 대응단계에서 구조를 맡은 해양경찰청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

행정기관 간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구조 지연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불만이 커지자 대통령이 서둘러 현장을 방문해야 했다. 국무총리가 직접 지휘하는 범정부 대책본부가 목포에 차려졌지만 서툴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청와대에 가겠다고 나섰겠는가. 앞으로 대형사고가 나면 무조건 대통령 입에 의존할 셈인가.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말 걱정이다.

국가재난 발생시 정부와 피해자, 정부와 국민 간 신뢰는 더없이 중요하다. 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정직해야 한다. 또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기에 수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4년 전 천안함 사건 때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심기일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