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나래] 한국 문학의 힘
입력 2014-04-21 02:19
최근 막 내린 영국 런던도서전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가는 황선미였다. 대표작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영어판(‘The hen who dreamed she could fly’)은 지난 7일 영국에서 공식 출간 뒤 5000부가 나갔다. 난종용 암탉 잎싹이 양계장을 탈출해 청둥오리 초록이를 자식처럼 키우며 펼치는 모험담으로 국내에서도 160만부 이상 팔렸다. 책은 잎싹이가 초록이를 떠나보낸 뒤 그를 내내 괴롭히던 족제비에게 기꺼이 목숨을 내주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빨리 죽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국내에선 끝까지 모성을 발휘하는 잎싹의 모습을 숭고하게 받아들였다.
반면 런던도서전 기간에 만난 외국인들은 이 결말을 매우 독특하고 한국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영국문화원의 코티나 버틀러 문학국장은 “‘아기 사슴 밤비’나 ‘샬롯의 거미줄’ 같은 작품에서도 주요 캐릭터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만 잎싹의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온갖 고생을 한 주인공이 성공해서 이젠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을 떠나다니, 우리로선 생각할 수 없는 결말”이라고 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영국 여성은 “마지막에 잎싹이 죽는 걸 보고, 역시 한국 이야기는 슬퍼야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독일에선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마지막 잎싹의 죽음 부분을 빼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이 책이 통한 건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잎싹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더라도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없으면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없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영국 독자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접한 아르헨티나의 독자도 하나같이 “보편적인 이야기라 공감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런던도서전 이후 ‘출판 한류’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린다. 작가들은 좋은 번역으로 언어 장벽을 넘어서는 게 급선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질적인 문화의 강을 건너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나라가 만든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인류 보편적인 감동과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 그러면서 보편성을 담은 이야기로 지구촌을 울고 웃기는 작품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출판 한류라는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다. 이미 곳곳에서 확인된 한국 문학의 위력을 믿기 때문이다.
김나래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