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
입력 2014-04-21 02:18
“세월호 참사는 어른들의 합작품… 희생 헛되지 않도록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자”
아이들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 그들 앞에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 있기가 힘들다. 도덕, 윤리, 양심, 책임감을 내팽개친 어른들로 인해 어린이와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는 탓이다. 경주 체육관 붕괴 참사, 참혹한 아동 학대 사건들, 학교 폭력으로 인한 학생들 사망 사건이 연이어 터지더니 급기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대형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요즘처럼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없었을 듯싶다.
진도 앞바다에 완전히 가라앉아버린 여객선 안에 지금도 200명이 넘는 고교생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더디지만, 수습되는 시신이 늘고 있다. 차갑고, 깜깜하고, 적막하기만 한 바닷속에서 아이들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얼마나 오열했을까. 침몰의 공포 속에서도 부모에게 ‘사랑해’ ‘걱정하지 마’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줘’ ‘살아서 만나요’라는 문자를 보낸 학생들, 팽목항에서 사고 현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며칠째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 가슴이 미어진다.
구조된 이들도 정상이 아니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수십 명의 고교생들이 심리적으로 위험한 상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들이 생생하게 목도한 사고 당시의 참담한 모습들과 산 자의 죄책감 등이 그들 머리와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평생 그들을 괴롭힐지 모를 일이다.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괜찮은 어른’도 있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최대 참사로 기록될 듯한 이번 사고의 주 원인은 어른들 잘못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출항 전 여객선에 대한 허술한 안전점검 과정, 캡틴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선장과 그 수하들의 망동, 사고 후 사망자 및 승선 인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한 유관 부처 및 기관,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 있는 와중에 현장을 찾아 선거 운동하려는 정치인들…. 분노와 절망감을 증폭시키는 사례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장면의 주역은 어른들이다. 그래서 구명조끼까지 벗어주며 친구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 고교생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낯을 더욱 뜨겁게 한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사회. 못난 어른들의 과오로 어린 학생들이 물에 빠져 죽어가도 거의 속수무책인 나라.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한두 사람이 아닌 공동체의 책임이 클 것이다. 무엇보다 급속하게 경제를 일으키면서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번진 대충주의와 적당주의, 이기주의라는 병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는 사고가 났다고 한순간에 털어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걱정스럽다. 더욱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원전 비리 사태와 KTX 납품 비리 사건 등이 암울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대형 사고가 또 발생할 개연성을 암시하는 요인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어른들의 어깨 위에는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책무가 놓여 있다. 수습 노력과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뒷북 대응이더라도, 국내 여객선들 안전 실태부터 치밀하게 점검하는 게 도리다. 배에 장착된 고무보트인 구명벌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승무원들에 대한 교육은 규정대로 실시하는지, 선박의 불법 개조는 없는지 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은 과감히 손봐야 한다.
다른 분야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초심을 잊은 건 아닌지 반성하고,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규정대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 각자가 스스로 기본을 다질 때 비로소 ‘안전 3류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안전한 국가’로 들어설 수 있다.
내달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이 있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정말이지 어른들 모두가 정신 바싹 차려야 한다. 바닷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울부짖고 있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