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기적을 건져라”…새벽까지 선체 진입 시도

입력 2014-04-19 03:32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기적을 건져내기 위한 절박한 사투가 밤새 이어졌다. 해경은 19일 새벽까지 수백발의 조명탄을 터뜨리며 시커먼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 실종자 찾기 총력전이 펼쳐졌다. 배 안에 남아 있는 산소 공간인 ‘에어포켓’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한계 상황에 다다라 수색 작업은 더욱 다급했다.

◇심야의 사투=해경은 18일 오후 6시10분쯤 야간 선체 진입 작업을 시작했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호스를 연결해 공기를 주입한 뒤 오후 6시33분쯤 잠수부를 바닷속으로 내려보냈다. 해경은 21명의 잠수부를 2인1조로 투입해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 목표는 3층 객실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돼 해경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세월호가 잠긴 바다는 컴컴했고 여전히 물살이 거셌다. 깊이를 측정해주는 눈금도 보이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오후 잠수조에 투입됐던 박희준 한강수난구조대 회장은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선미 아래쪽에 유도선(가이드라인)을 설치했는데 줄을 잡고 내려가니 갑자기 먹구름이 끼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잠수부들은 선미를 통해 화물칸을 지나는 방법, 선수 쪽 난간을 잡고 내려가 3층 객실로 바로 진입하는 방법 등 다양한 루트를 찾아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물살은 더욱 거칠어졌고 더 이상의 진입은 어려웠다. 거친 조류로 체력이 금방 떨어져 호흡이 가빠졌고, 산소량도 금방 줄어 잠수 시간이 부족했다. 바닷물이 마스크를 뚫고 들어올 정도로 물살이 셌다고 한다. 잠수부들은 “조류 때문에 줄(가이드라인)을 놓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잡고 내려갔다”며 “나중에는 팔이 너무 아파 혼났다”고 말했다.

세월호 선미와 부표가 연결된 줄의 각도가 40도 가까이 벌어졌을 정도로 조류가 거셌다. 한 잠수부는 “오후에 줄을 배 중간 중간 연결하며 올라오는 게 임무였는데 조류가 세서 머리를 숙인 채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잠수부들은 결국 오후 7시55분쯤 수면 위로 올라와 진입 루트를 다시 점검했다. 잠수부들은 오후 10시쯤 선실 진입을 재시도했다. 이번에는 해군 24명, 해경 20명 등 모두 44명의 잠수부가 투입됐다. 오후 11시8분쯤 해경 잠수부 2명이 다시 내부격실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정이 다 되도록 진입은 성공하지 못했다. 선체 내부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야간 수색에는 육·해·공군이 모두 지원에 나섰다. 공군은 항공기(CN-235) 6대를 보내 12시간 동안 조명탄 780발을 터뜨렸다. 청해진함과 다도해함, 평택함 등 3척의 해군 구조함도 잠수부 총력 지원에 들어갔다. 전국에서 온 해경 경비정 80척 등 수색함정 110척 역시 수색 작업을 위해 투입됐다. 침몰 사흘째 시작된 해경의 선체 진입 총력전은 실종자 구조가 그만큼 시급함을 반증한다.

◇오전부터 본격화된 구조작업=구조 작업이 본격화된 것은 이날 오전 11시19분 공기주입 작업이 처음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실낱같은 희망이 되살아났다. 해경은 조타실로 추정되는 선체 안에 19㎜ 호스를 연결하고 선체로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공기주입은 잠수부들이 번갈아가며 수중용 에어 컴프레서로 공기를 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에어포켓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찾아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배 윗부분 틈새를 찾아 호스로 내부에 공기를 주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객실 식당, 4층 일부 객실 등에 집중적으로 공기를 주입했다. 만조가 되면서 물이 들어왔고 선체도 조금 기울어져 세월호는 오전 한때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군은 세월호가 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했다. 해군은 35t급 리프트 백 25개와 10t급 1개를 대형 수송함 독도함(1만4000t)에 실어 사고 해역으로 옮겼다. 잠수부들은 마침내 선체 진입을 위한 통로 확보에 성공했다.

이날 오후 잠수부들은 유도선 설치까지 마친 뒤 처음 세월호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 물 밖에서 고압 호스를 통해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줄 잠수’ 방식이 시도됐다. 잠수부들은 선미에 설치된 유도선을 잡고 내려가 화물칸에 진입한 뒤 객실로 들어가는 루트를 시도했다. 잠수부들은 시야가 흐려 손을 더듬으면서 이동했다. 간이 조명을 켜야만 줄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손망치로 소리를 내 혹시 에어포켓 안에 있을지 모를 생존자들에게 신호도 보냈다.

그러나 진입은 곧 난항을 겪었다. 잠수부들은 배의 2층 화물칸 출입문을 열고 선내 진입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화물칸에 쌓인 화물이 너무 많아 더 이상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잠수부가 나온 뒤로는 선체와 연결된 유도선까지 끊기면서 곧바로 철수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출신 잠수 전문가는 “이번 사고 현장의 경우 가시거리가 10∼20㎝에 불과하고 조류가 강해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보다 여건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민간 잠수사는 하루 4번 기회가 있는 정조시간 전후 30~40분이 아니면 진입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월호 인양 작업에 참여하는 해상크레인 등도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삼성중공업의 3600t급 해상크레인 ‘삼성 2호’는 오전 11시쯤 도착했다. 앞서 오전 4시쯤에는 해양환경관리공단의 2000t급 해상크레인 ‘설악호’ 등 2척이 현장에 왔고 전날에는 대우조선해양의 3200t급 해상크레인 ‘옥포 3600호’가 사고 해역 인근에 도착했다. 도착한 해상크레인 4대는 사고 해역 인근에 대기했다.

진도=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