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언어’ 한글로 쓴 한국 문학 작품은 꽤 오랫동안 ‘번역의 장벽’에 가로막혀 영어권에 진출하지 못했다. 굳이 비영어권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충족할 만큼 풍부한 그들의 시장 특성이 제일 큰 이유이지만, K팝이나 K필름 등 다른 장르의 선전에 비하면 맥을 못 췄다.
이문열 작가는 “영국이나 미국으로의 진출은 영 부진한 게, 아주 묘한 정체가 느껴진다”는 말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프랑스에서 10권, 스페인어권에서 9권, 독일에서 6권이나 번역 출간됐지만 영어권에는 단 세 작품만 소개됐다.
그런 점에서 지난 8∼10일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관에서 진행된 런던도서전 마켓포커스(주빈국) 행사는 한국 문학이 영어권 심장부인 런던에 드디어 상륙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별을 스치는 바람’의 이정명, 웹툰 ‘이끼’ 등으로 유명한 윤태호 등은 현지 출판사 관계자들은 물론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이런 ‘반짝 관심’에 고무돼 손놓고 있기엔 한국 출판계가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국 문학이 음악이나 영화처럼 진짜 ‘한류’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발걸음을 이어가야 한다.
그동안 한국 작가들의 해외 성공 뒤에는 반드시 따라다니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이구용 KL 매니지먼트 대표다. 한국 문학을 외국에 수출하겠다는 일념으로 전 세계를 뛰어다닌 출판 에이전트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부터 최근 ‘엄마를 부탁해’,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르기까지 그의 숨결이 안 담긴 작품이 없다. 10년 넘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 샘플본으로 만들어 해외 에이전시에 보내고, 출판될 수 있도록 수시로 비행기 타고 찾아가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그는 “영어권 시장은 10년 넘게 두드리니 이제 조금 열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문학의 영어권 진출 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바바라 지트워다. 미국 뉴욕에서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그는 이 대표와의 인연으로 한국 문학의 수출 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런던도서전 현장에서 만난 지트워는 “한국 문학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고 한계가 없다”며 “특히 이번에 소개된 이정명은 한국의 ‘스티그 라르손’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라르손은 범죄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전 세계 30개국에서 6000만부 이상 판매하며 북유럽 스릴러 열풍을 일으킨 스웨덴 작가다. 조만간 그의 에이전시를 통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안도현의 ‘연어’ 등이 미국에서 나온다.
과거보다 현격히 높아진 번역자들의 힘도 컸다. 신경숙 작가는 “해외 독자들이나 출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아보면, 제 작품이 제대로 번역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김지영, 김소라씨 같은 좋은 번역가들을 잘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이렇듯 런던에서 확인된 K문학의 가능성은 한국 출판 시장 전체의 성과라기보다는 몇몇 작가, 그들을 알리기 위해 애써온 집념의 에이전트, 유능한 번역자 등 소수의 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이 출판 한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런던 도서전을 계기삼아 지속적인 네트워킹을 만들고, 전략적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출판계에서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영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하는 것, 그동안 작가들에게 지원돼 왔던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출판사 편집자, 번역자들로 확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지트워의 케이스처럼 ‘지한파’ 에이전트나 편집자를 발굴해 키워내는 것도 시급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국내 출판 시장의 활성화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내놓고, 국내 출판 시장에서 크게 호응을 얻을 때 비로소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도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도 국내에서 6개월 만에 100만부 이상 팔리며 주목받았다는 점이 해외 시장 진출 과정에서 홍보 포인트로 부각됐다.
런던도서전에 참여했던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해외에서 호응을 받은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은 치열한 경쟁 끝에 국내 콘텐츠 이용자로부터 인정받은 뒤 자연스레 문화의 강을 건너 해외로 나간 것”이라며 “한국에서 몇 십만 부 이상 팔리고 주목받는 작가가 나올 때 한국 문학의 한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K필름·K팝 이어 이젠, K문학이다!… 한국문학, 영어권 심장부 런던 상륙
입력 2014-04-19 02:58 수정 2014-04-19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