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가장 큰 덕, 순종
입력 2014-04-19 02:55
이집트 스케테 사막에 사는 네 명의 수도사가 원로 팜보를 방문했다. 그들은 서로 덕을 칭찬했다. 첫 번째 수도사는 금식을 많이 했고, 두 번째 사람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세 번째 수도사는 사랑이 많았다. 네 번째 사람은 22년 동안 한 원로를 끔찍하게 받들며 순종하고 살았다.
듣고 있던 팜보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 더 큰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기 자신이 원하는 덕을 획득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사람은 자신의 뜻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끝까지 인내한다면 순교자가 됩니다.”
사막 교부들이 이해한 순종은 다른 사람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의지와 뜻을 버리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 자기 의지를 지배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들은 순종을 어떤 덕보다 가장 큰 영광을 받을 덕으로 높이 평가했다.
한 원로는 “순종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하늘로 올라가게 만들며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했다. 원로 히페리키우스는 성실히 순종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옆에 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우리 주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로 가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순종은 기본
사막 교부들이 순종을 강조한 이유는 순종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순종 없이 다른 덕들을 가질 수 없다. 순종을 훈련했을 때 인내, 온유, 겸손 같은 다른 덕들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순종을 모든 덕의 어머니로 보았다. 스승들은 이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아주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살던 사람이 수도원에 왔다고 하루아침에 순종의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순종을 훈련했을까. 다음 일화는 사막에서 가장 유명한 순종의 사례다.
키 작은 존이 스케테 사막에서 테베 출신의 한 원로 수도사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그의 사부는 마른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땅에 심고서 “이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매일 물 한 양동이를 주게”하고 말했다. 그런데 샘이 너무나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저녁에 물 길러 떠나면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곤 했다. 3년이 지나자 막대기에서 푸른 잎이 돋고 마침내 열매가 열렸다. 그 원로는 열매를 몇 개 따서 교회로 가져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순종의 열매요. 받아먹으시오.”
이런 행위는 우리가 볼 때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오래 걸리며 어려운 일인가를 보아야 한다. 이를 안 사막 스승들은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다. 원로 아레스는 조언을 구하러 온 한 수도사에게 “가서 1년 동안 저녁에 빵과 소금만 먹고 생활한 후에 오면 다시 말해주겠소”라고 했다.
한 원로는 추수철이라 수도원의 추수를 돕겠다는 제자에게 “자네는 추수는 놔두고 곧장 골방에 가서 50일 동안 나오지 말고 하루에 한 번씩 떡 하나와 소금, 물만 먹고 지내게. 그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 수도원의 원장은 수련 수도사에게 수도원 문 앞에 서서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절하면서 “저는 병든 사람이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라고 명령했다.
파네피시스의 조셉은 왜 스승들이 가혹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로들은 처음에 제자에게 바른 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고, 제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심술궂은 일을 하라고 한다. 제자들이 그것을 행하는 것을 보면 그다음부터는 이상한 짓을 하라고 더 이상 명령하지 않는다. 제자가 모든 일에 순종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종과 부활
사막 수도사들의 명령과 순종은 합리적, 상식적인 판단을 넘어선 것이나 나름대로의 논리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명령을 내렸다. 제자는 그 명령을 하나님의 지시처럼 믿었기에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묻지 않았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두말없이 순종했듯 그냥 지시하는 대로 행할 뿐이었다. 명령이 납득하기 힘들수록 순종하는 인격은 더 빨리 형성됐다. 순종의 훈련을 통해 자아 중심의 높은 담은 무너졌다. 명령과 순종, 그 합작이 사막에서 명품 인성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일대일 스승과 제자 관계가 아니라도 주변에는 부모 부부 교사 목회자 직장상사 선배 등이 있다. 오늘 누가 내게 무엇을 말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두말없이 순종해 보자. 그들의 명령 뒤에 주님의 뜻이 있다고, 순종을 배울 좋은 기회가 왔다고 여기자. 그들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 순종하겠다고 결심하자.
성부의 뜻에 성자께서 순종하셨기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베들레헴에서 골고다까지 주님의 전 생애는 한마디로 순종이었다. 순종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은 없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