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조타실 비운 선장… 선실 지킨 아이들
입력 2014-04-18 03:43
세월호 이준석(69) 선장이 학생들이 대다수인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고 승무원들과 함께 먼저 탈출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 선장 등이 탈출한 다음에도 “가만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믿었다가 참사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17일 밤 12시 현재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 325명 중 78명만이 구조됐고 247명(76%)이 사망·실종 상태다. 반면 어른들은 150명 중 101명이 구조됐고, 49명(33%)만이 사망·실종됐다. 어른의 구조비율이 학생의 2배가 넘는다. 배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어른들의 무책임이 그들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수많은 학생들을 지켜내지 못한 셈이다.
해경 조사와 승무원들의 전언 등을 종합하면 이 선장은 사고 전 새벽까지 수면을 취한 뒤 사고 당시 조타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선장은 16일 오전 8시40분쯤 배가 왼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등 이상을 감지하고 조타실로 돌아왔다. 이 선장은 승무원들에게 “힐링하라(배수펌프를 작동해 배의 균형을 잡으라는 의미)”고 지시했으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힐링에 실패한 이 선장은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지시했고, 고(故) 박지영(22·여)씨 등 승무원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선장은 오전 9시 전후 일부 승무원들에게 퇴선을 명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조된 학생들은 “오전 10시 넘어서까지 방송에서는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다. 대다수가 지시를 따랐다”고 말했다. 이 선장의 퇴선 명령이 승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이씨가 첫 구조선에 탔는지 여부를 수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전상엽 한국해양수산연구원 교수는 “타이태닉호도 그렇고, 선장은 보통 마지막 승객이 떠날 때까지 배를 지키는 행동을 한다”며 “(하지만 이 선장은) 적절한 판단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수사 중인 목포해양경찰서는 17일 이 선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2차 소환 조사했다. 이 선장은 조사에서 “사고 당시 조타실에 없었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이 선장을 상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사고 원인, 긴급 대피 매뉴얼 이행 여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으며, 이씨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선원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선장이 승객 구조에 나서지 않고 서둘러 배에서 피신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선원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선원법 11조는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원법 제9조는 ‘선장은 선박이 항구를 출입할 때나 좁은 수로를 지나갈 때 또는 그밖에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에는 선박의 조종을 직접 지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선원법 위반 혐의가 모두 적용될 경우 최대 징역 7년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이 선장은 해경 조사에 앞서 “승객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 선장은 그러나 ‘승객들을 놔두고 먼저 배를 빠져나왔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 선장은 국내 최대급 규모의 여객선 운항을 책임졌지만 1급 항해사가 아니라 2급 항해사 면허 보유자인 것으로 나타나 적격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선박직원법상 3000t급 이상 연안수역 여객선의 경우 2급 항해사 이상의 면허를 보유하면 선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선장의 2급 면허는 법적 결격사유는 아니다. 그러나 6825t급으로 대형인 세월호를 책임지기에는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고 당시 조타실 운항을 맡았던 항해사는 경력 1년의 20대 3등 항해사 박모(26·여)씨였으며, 박 항해사는 사고 지점 항로 운항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인1조’로 박 항해사의 지시를 받아 키를 조작하는 조타수도 세월호 운항 경험이 5개월인 조모(55)씨였다. 조씨는 “박 항해사는 사고 지점 근처에서는 운항을 해본 적이 없다”며 “출항이 지연되지 않았다면 박 항해사가 사고 지점을 운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월호는 사고 당시 자동운항이 아닌 수동운항을 했다는 점에서 3등 항해사가 조타실을 맡기에는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진도=전웅빈, 정현수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