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영국 복지개혁이 말하는 것들

입력 2014-04-18 02:01


“과잉복지는 근로의욕 떨어뜨려 … 증세 공론화해 지속가능한 복지체계 짜야”

몇 년 전 아이 9명을 둔 한 영국인 부부가 런던 시내 저소득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council house)에 살면서 정부가 주는 수당으로 놀고 먹는다는 기사가 실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몇 년 씩 실직급여를 받고 15세 아이까지 아동수당에 저소득층은 주거수당, 소득보조 등을 받다 보니 굳이 일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1601년 ‘엘리자베스 구민법’을 만들어 가난은 국가책임임을 처음으로 법에 명문화하고 1942년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 보고서에 의한 보편적 복지체제를 표방한 복지 원조국가 영국이 겪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자협회가 한 달간 일정으로 국내외에서 열고 있는 복지포럼의 일환으로 지난주 영국을 다녀왔다. 보건부와 옥스퍼드대, 브리스톨대, 민간 취업알선회사 등을 방문하면서 영국 복지개혁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고령화로 연금이나 무상의료비용이 늘어 재정적자가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영국의 고민은 복지혜택이 넘치다 보니 근로연령층의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일하지 않고 복지에 의존하는 가족이 일하는 평균적인 가족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에서 세금을 내는 만큼 복지혜택을 못 받고 있다는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도 영국이 복지수술에 나선 이유다.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부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도 복지개혁을 추진하긴 했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가 이끄는 보수·자민 연립정부의 복지개혁은 영국 사회보장제도가 구축된 이래 가장 큰 변화다. 30가지 이상의 복지급여와 세액공제를 ‘통합수당(Universal Credit)’으로 합쳐 가구당 상한액을 설정하고 상위 15% 고소득층에 대한 아동수당 삭감, 직장연금 의무가입 등이 현 정부가 내세운 ‘일하는 사람이 더 유리한, 작동하는 복지’를 위한 개혁방안들이다.

과잉복지를 줄여가는 영국은 과소복지를 늘려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구축하려는 우리나라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우리나라는 올해 처음으로 복지예산이 100조원을 넘었고,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6%로 영국의 53.9%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문제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복지정책이 확대돼야 지속가능하다는 점이다. 영국은 2020년 흑자재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는 균형재정 달성시기를 2014년으로 정했다가 복지지출이 늘면서 2017년으로 늦췄다. 나라곳간을 생각지 않고 퍼주다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재정이 파탄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또 한 가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조세부담률은 2010년 기준 28.3%, 여기에 국민연금·의료보험료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34.9%에 달한다. 영국은 현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함께 부가가치세를 17.5%에서 20%로 올리고 소득세 공제 축소, 국민보험기여금 1% 인상 등을 단행했다. 반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9.3%, 국민부담률은 25.0%에 그친다. 세금을 더 내고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을 것인지, 덜 내고 덜 받을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영국 복지정책에서 느낀 것은 우리처럼 선거철 표를 의식한 주먹구구식 복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따라 1940년대부터 무상의료, 아동수당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졌고, 경제상황에 따라 큰 틀은 허물지 않은 채 수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선거 때 ‘갑툭튀’한 무상급식, 무상보육으로 후폭풍을 겪는 중이다.

“증세에는 저항이 따르겠지만 세금을 적게 낸다고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복지서비스를) 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그만큼 든다”는 옥스퍼드대 사회정책연구소 프란 베넷 선임연구원의 말처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젠 증세를 공론화해서 복지체계를 치밀하게 짜야 할 때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