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가 세상과 만났을 때의 이미지 언어로 재생… 김지녀 시집 ‘양들의 사회학’
입력 2014-04-18 02:36
우리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는가. 정답은 신체이다. 신체가 없으면 세상을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세상과 만난 신체는 세상을 닮아간다. 2010년 첫 시집 ‘시소의 감정’으로 편운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김지녀(36·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양들의 사회학’(문학과지성사)은 얼굴과 목, 손과 발가락 등 우리의 신체가 세상과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언어로 재생시키는 데,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목이 계속 자란다면/ 액자의 바깥을 볼 수 있겠지// 눈동자가 없어도/ 밤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 웃는 입이 없어/ 조용해진 세계에서// 얼굴과 얼굴과 얼굴의 간격// 목이 계속 자란다면/ 무너질 수 있겠지”(‘모딜리아니의 화첩’ 부분)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인의 긴 목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바깥을 향해 계속 자라는 목이란 존재의 변이를 의미한다. 여기서 계속 자라는 목의 욕망은 액자 바깥을 보려는 욕망이며 자라는 목의 관점에서 보면 얼굴의 간격은 이전 위치를 기준으로 계속 바뀌게 된다. 또한 “목이 계속 자란다면 무너질 수 있겠지”라는 독백은 실패한 자본주의적 얼굴의 위기감을 반영한다. 김지녀의 시 세계는 궁극적으로 세계의 자화상이 될 신체의 부분들을 포착하는 데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는데 그가 그리는 ‘세계의 자화상’은 ‘똑바로 걸어도 나는 비뚤어진다’로 상징되는 시대의 초상을 동반한다.
“열한 개의 발가락은 조금 넘칩니다/ 발가락들 옆에서 발가락이 처음으로 낭비라는 말을 이해했을 때// (중략)// 넘친다는 것은, 공중에 떠서 움직이고 있는/ 나의 바깥과 나의 무게는/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아득함은,/ 위험한 것입니까?// (중략)// 오늘 나는 나를 좀더 낭비하겠습니다/ 열한 개의 발가락으로/ 흔들리겠습니다”(‘저울과 침묵’ 부분)
발에서 솟아나왔으나 열 개의 발가락에서 넘쳐버린 이 낯선 잉여는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는 나의 무게이다. 게다가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아득함”은 예상 외로 깊고 간격도 넓다. 그런데 ‘나’는 “열 한 개의 발가락으로 흔들리겠다”고 한다. 열한 개의 발가락은 계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저울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계측되는 세계를 탕진시킴으로써 발생하는 비약적인 이미지로 새로운 시 세계를 열어 보이겠다는 메시지를 김지녀는 이번 시집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