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대형 베스트셀러 ‘그레이 시리즈’를 뜯어보다

입력 2014-04-18 02:42


사랑은 왜 불안한가/에바 일루즈(돌베개·9800원)

2012년 봄, 영국 독서시장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치고 가장 빠른 시간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대형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전 세계에서 총 1억 부 이상 팔려나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그것이다. 속편을 포함해 총 3부작으로 출간됐다.

고통을 가하는 남주인공 그레이와 고스란히 그 고통을 당하는 여주인공 아나스타샤 사이의 사랑의 권력관계가 주된 내용이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성애 묘사로 채워져 있어 ‘엄마 포르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섹스만을 추구하던 그레이에게서 아나스타샤가 진정한 사랑을 이끌어 낸다는 결말 때문인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바이블’이라는 칭송을 듣기도 했다.

인간 감정을 폭넓게 연구해 온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작품을 집중 분석한다. 개인의 내밀한 행위인 섹스를 사회적 행위로 보는 저자는 그레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BDSM(구속과 순종,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뒤섞인 성생활을 뜻하는 조어)’이라는 기형적 사랑관계를 개인의 심리적 차원이 아닌 글로벌 자본주의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그레이 시리즈는 ‘조악한 문학’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성생활과 애정생활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희상 옮김.

김혜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