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시대 고통의 고향마을, 상처 어루만질 수는 없을까… 김영현 장편 ‘누가 개를 쏘았나’

입력 2014-04-18 02:35


2년 전 실천문학 대표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간 소설가 김영현(59)이 장편 ‘누가 개를 쏘았나’(도서출판 시간여행)를 냈다. 소설을 붙들기 전까지, 그는 세상에 말문을 열 수 없어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평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흑천’을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장터의 촌로처럼 늙어가는 법과 풀 베고 장작 패면서 외부에 의존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을 차츰 터득할 즈음, 그는 어느 날 운명처럼 끔찍한 사건과 맞닥뜨린다. 마을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의 유일한 식구인 개들을 누군가 엽총으로 쏘아 죽인 것이다. 생명에 가해진 끔찍한 폭력과 할머니의 슬픔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그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4년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한 이래 민족문학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과거의 김영현 문학은 분노와 슬픔 등 고통의 언어들로 가득했지만 이번 소설은 ‘치유’에 맞춰진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작가는 그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이 소설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30대 중반의 장하림은 초중고 시절부터 문예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현재는 별로 유명할 것도 잘 나간다고 할 것도 없는 시인이다. 장하림은 논술학원 강사로 생계를 유지해오다가 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백수의 처지가 되고 만다. 하림은 친구 동철의 소개로 만난 화가 윤재영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는다. 고향에서 개들이 연달아 총에 맞아 죽는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고향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살필 겸 홀로 계신 고모도 가까이서 보살필 겸 자신의 화실에 가서 몇 달만 지내달라는 것이다. 윤재영의 고향 바람골로 내려간 하림은 도시와 다르게 느리게 흐르는 바람골의 시간 리듬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새로운 인물들을 만난다. 개들을 쏘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는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의 이층집 노인, 상처받은 자들의 안식처를 세울 것을 꿈꾸는 노인의 딸 남경희, 군대 생활 중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쳐 다리를 저는 이장 운학, 그리고 내면에 상처를 간직한 20대 소연, 한의학과 침술에 능통한 수관 선생이 그들.

“‘문제는 그 일로 우리 고향 마을이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에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 같은 것……’ ‘이상한 기류……?’ ‘고향 마을에 흐르고 있는 알 수 없는 의심과 증오, 분노 같은 것 말이에요.’”(33쪽)

또 다른 축은 이 마을에 대형위락시설을 유치하려는 세력과 기도원을 지으려는 인물들의 대립이다. 이 두 세력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마을에는 불편하고 묘한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전쟁이 종(種)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만화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하림은 또 한 발의 총성을 듣게 된다.

추리소설의 긴박한 구조를 가진 소설의 이면엔 이러한 엽기적 사건을 발생시킨 진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인물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 가령 이런 모습이다. “임시정부에서 가난하게 살던 독립군에 비해 형편없이 이지러지고 비굴한, 유리에 비친 내 얼굴”(22쪽)이라거나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CNN이 날라다주는 이라크 침공 뉴스를 감상하는 자본주의자들”(63쪽) 혹은 “몇 억 몇 십억씩 하는 아파트 구멍에 들어앉아 생을 소비하는 사람들”(82쪽)이 그것.

이들의 모습은 전쟁이나 생태적인 재난, 전염병으로 인한 동물 대학살, 기아로 인한 아이들의 죽음 등의 뉴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듣는 우리 자신을 닮았다는 점에서 소설 제목이 던지는 질문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누가 개를 쏘았나?’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바람골로 찾아든 주인공 하림은 도시의 삶을 버리고 양평의 집필실에 칩거한 작가의 또 다른 분신은 아니었을까.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