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SSU 잠수대원들, 선실 내부 진입 극적으로 시신 한 구 건져

입력 2014-04-17 04:54

군·경 수색 어떻게… 물살 빠르고 수중 시계 20㎝ 불과

“악!”

16일 사고현장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대원 두 명이 물속에서 시신을 껴안고 나오자 한 여성 대원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잠수대원들이 여객선 내 통로를 찾아 내부로 진입한 뒤 시신 한 구를 찾아 물 위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대원들은 곧바로 주변의 해경 경비정으로 시신을 옮긴 후 헬기를 이용해 다시 육지로 이송했다.

군과 경찰은 가용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동원해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물살이 빠르고 수중 시계가 좋지 않은 데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SSU 대원들은 오후 5시쯤 1차 선체 수색작업을 시도했지만 수중 시야가 20㎝밖에 안 되고 유속도 초속 2븖로 빨라 실패했다. 오후 6시30분쯤 다시 선체에 진입해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인명을 구조하지는 못했다. 구조대는 오후 8시쯤 선체 수색을 중단했다가 새벽에 구조함인 청해진함과 평택함이 도착한 뒤 수색을 재개했다. 청해진함과 평택함은 수색 대원들에게 생명줄과 감압장비, 중앙 산소공급 장치를 지원했다.

물때가 맞지 않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잠수 대원들은 물이 빠지며 세월호의 선수 바닥 부분이 수면에 드러나자 바쁘게 움직였다. 세월호 선수 옆면에 여러 가닥의 밧줄을 옭아매고 산소 호흡기를 멘 SSU 대원 2명이 침몰한 선미 부분에서 물속으로 잠수했다.

1분여를 물속에 있던 SSU 잠수대원들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무보트에 탑승한 지휘대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다시 배의 겉면을 훑으며 더욱 깊이 잠수해 수색을 계속했다. 1시간가량 지난 6시쯤 세월호 선수 부분으로부터 50m 지점에 미리 잠수해 있던 잠수대원 두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SSU와 해경의 고속 단정 2대가 빠르게 잠수대원 쪽으로 접근했다. 이어 시신 한 구가 물 위로 끌어올려졌다.

잠수수색에 돌입한 SSU 대원들과 해경은 조명등과 서치라이트를 밝히고 수색을 계속했으나 배 안 진입로가 비좁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수색에 투입되지 못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침몰한 배에서 흘러나온 컵라면, 아기 기저귀 등 생활물품들이 흘러나와 떠다녔다.

해경은 선체에 실종자 상당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실 내 물이 차지 않아 형성된 숨쉴 수 있는 공간 ‘에어포켓(air pocket)’이 있다면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지난해 5월 대서양에서 침몰한 배 안에 타고 있던 20대 나이지리아 남성이 에어포켓을 발견해 3일간 생존한 끝에 극적으로 구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수온이 낮고 선체 대부분이 물에 잠겨 있어 저체온증과 급성 폐부전 등이 우려된다.

사고 해상에서 북서쪽 155㎞ 서해상에서 순찰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해군 상륙강습함 ‘본험리처드호’(4만t급)도 우리 해군 요청을 받고 밤늦게 현장에 도착해 수색작업을 지원했다. ‘헬기 항모’로 불리는 본험리처드호는 독수리훈련에 참가하기 위한 미 해병대 병력을 실어 나를 M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를 태우고 방한했다.

공군은 CN-235 수송기를 이용한 조명탄 지원으로 야간 수색작업을 도왔다. 공군은 총 6대의 CN-235 수송기에 조명탄 100발을 싣고 17일 아침까지 3분에 두 발씩 발사해 사고 현장을 밝혔다.

아시아 최초 수중 문화유산 발굴선인 ‘씨뮤즈(Seamuse)’도 동원됐다. 씨뮤즈는 2006년 11월 처음 취항한 이래 서해와 남해 일대 각종 해저 발굴현장에 투입됐다. 19t 규모의 FRP선박으로 최대속력 35노트, 최대승선 인원 13명, 길이 19븖, 폭 4.4븖로 다이빙 시설과 인양시설을 갖춰 수중조사와 유물인양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특히 수심이 낮은 해역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