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부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쌀 시장 전면개방 ‘초읽기’

입력 2014-04-17 03:15


정부가 쌀 시장 개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국회 보고 절차를 밟기로 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미룰수록 의무수입 물량이 늘어나 쌀 산업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면 개방은 불가하다며 맞선다.

◇정부, 쌀 시장 전면 개방으로 가닥=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16일 “현행법상 통상 업무를 하면서 국회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쌀 시장 관세화 문제는 국회 사후 비준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어 준비 중인 양허안을 국회에 먼저 보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쌀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원칙적으로 모든 나라가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품목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필리핀 일본 등은 특수성을 인정받아 유예기간을 가졌다. 우리는 10년간 두 차례(1995∼2004년, 2005∼2014년) 개방이 유예됐다. 대신 일정 물량을 의무 수입해왔다.

올 연말로 관세 유예 기간이 끝나므로 재협상을 통해 유예를 지속할지, 개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다른 세계무역기구(WTO) 국가들이 추가 유예에 동의해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최근 5년간 쌀 관세화 의무를 추가 유예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무수입 물량을 2.3배 늘리고 쌀을 제외한 다른 품목의 관세를 인하하는 등 상당한 조건을 제시했으나 다른 회원국이 추가 관세 유예에 반대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로 볼 때 우리나라가 추가 관세 유예 조치를 얻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오는 9월 WTO에 제출할 수정 양허표에 관세율을 표시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그 전에 국회에 보고하겠다는 건 쌀 시장 개방에 무게를 두고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쌀 관세화가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공감대가 국회 내에 상당 부분 있는 만큼 아예 협의가 되지 않을 사안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WTO에서 연말까지 추가 관세 유예 인증을 받지 못하면 당장 내년 초부터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시한이 정해져 있는 문제인 데다 WTO 인증 과정도 시간이 걸려 국회의 사후 비준이 개방 여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무수입량=우리나라는 올해 쌀 40만8700t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두 차례 쌀 시장 개방을 미루면서 선택한 의무수입 물량이다. 관세화를 통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의무수입량은 40만8700t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개방을 미룰 경우 매년 2만t씩 의무수입량이 늘어난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423만t이었다. 현재 국내 생산량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의무수입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면 쌀 생산 기반이 붕괴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필리핀이 제안한 방식으로 계산하면 2025년 의무수입량은 94만t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생산량의 22.2%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그러나 벼농사 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의무수입량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게다가 1인당 쌀소비량도 꾸준한 내리막을 걷고 있어 국내 쌀 농가엔 부담이 크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의무수입량을 늘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농 등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쌀 시장 전면 개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46개 농민·시민단체는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를 결성해 쌀 시장 개방 반대에 나섰다. 범국본은 “먹거리 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건강을 빼앗기고, 쌀을 지키지 못하면 식량주권을 빼앗긴다”고 주장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지금 쌀이 많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국민들한테 알리지 않고 있다. 쌀이 부족하면 식량주권뿐 아니라 농민들 생존이 모두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쌀 자급률은 86%에 그쳤다.

전면 개방 이후 수입산의 시장 잠식 가능성도 논란거리이다. 정부는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수입쌀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굵직한 무역협정을 통해 언제든 관세는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쌀 협상 주요 일지

▲1995년=세계무역기구(WTO) 한국 쌀시장 개방 10년간 유예(최대 국내 소비량의 4%를 의무적으로 수입)

▲2004년 1월=WTO에 쌀 협상 개시 의사 통보

▲2004년 5월=미국 등 9개국과 쌀 관세화 협상 개시

▲2004년 12월=중국, 미국과 8차 회담 개최

▲2004년 12월 30일=농림부 쌀협상 최종 결과 발표. 관세화 유예 2014년까지 10년 추가 연장, 수입쌀 시판 의무물량 10%에서 30%로 점진적 확대, 의무수입물량 10년간 7.96%로 확대 등

▲2014년 9월 이전=관세율 등 핵심사안을 국회에 보고하고 동의절차 밟을 예정

▲2014년 9월=WTO에 수정 양허표 제출 예정

선정수 권기석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