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직전 상황 찍은 동영상 공개
“학생들은…. 여기 학생들 어떡해. 학생들은 다 어떻게 됐어?” “학생들 다 밑에 객실에 있어요.”
16일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한 승객이 사고 당시 배 안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에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동영상 3편의 배 안 모습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4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였다. 승객들은 엎드려 기거나 어디론가 급히 전화하며 아우성을 쳤다. 배 바닥에는 물이 밀려들어 시냇물처럼 흘렀다. 동영상에 찍힌 이들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헬기에 오르면서도 선실에 남아 있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걱정하는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었다.
승객 김동수(49)씨가 제공한 동영상 중 두 편에는 갑판 한쪽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10여명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45도 이상 기울어진 갑판에서 벽에 엉거주춤 기대거나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자 난간에 매달려 있던 남성이 “어이~양반~여기~”하며 큰 소리를 질렀다. 나머지 사람들도 “헬기가 왔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옥 같은 현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한 아주머니가 학생들의 신변을 묻자 옆에 있던 남성이 아직 객실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중년 남성은 “밥을 먹다 갑자기 뭐가 ‘화악’ 올라오면서 바닥으로 쓰러져서 다리가 다 쓸렸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도 갑판 위에 나와 있던 이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구조대를 발견해서인지 그나마 표정이 밝은 편이었다. 선박 내부에서 찍힌 사람들의 표정은 이들과 사뭇 달랐다.
김씨가 제공한 세 번째 동영상에는 이미 복도에 물이 흥건하게 흐르는 등 침몰이 임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울어진 배 안에서 사람들은 벽에 기대 가까스로 서 있었다. 한 남성은 허망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하다 허탈한 미소도 지었다. 다른 남성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옆에 주저앉았다. “불난 거보다 더해” “이 XX들이 제대로 조치를 안 한다”는 격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들이 급박한 상황임에도 서둘러 탈출하지 않고 복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안내방송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복도에 물이 잔뜩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합니다”라는 다급한 안내방송이 나왔다. 김씨는 “나중에 증거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동영상을 찍었다”며 “젊은 학생들이 너무 많이 실종된 상태여서 정말 걱정된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생들은 15일 오후 9시가 넘어 인천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출발했다. 오후 6시30분 출발하려다 짙은 안개로 무산될 뻔했던 여행이 재개되자 학생들은 마냥 들떠 있었다고 한다. 16일 단원고에서 만난 학부모 A씨는 “배가 못 떠서 걱정했던 아들이 다시 출발한다며 신나서 전화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밤사이 바다에서 선상 불꽃놀이를 즐겼다.
출항 12시간 만에 일생에 한 번뿐인 고교 수학여행은 대형 참사로 돌변했다. 16일 오전 7시부터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마친 뒤인 오전 8시52분. 전남 소방본부 상황실로 긴급한 신고전화가 걸려 왔다.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어디인지 모르겠는데 선생님 바꿔 드릴게요….” 앳된 목소리의 신고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로 긴장한 채 말을 이어갔다. 이후 소방본부 상황실에는 몇 분 동안 15통의 신고전화가 잇따랐다.
이때 선박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을 지나고 있었다. 배가 갑자기 ‘꽝’하며 어딘가에 부딪힌 뒤 바닷물이 배 안으로 급격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수 왼편으로 기울던 배는 불과 2시간 만에 거의 직각으로 쓰러졌다.
선실에 있던 승객들은 급격히 기우는 배 안에서 중심을 잃어 쓰러지고 나뒹굴었다. 선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해도 기울어진 바닥을 거의 등산하듯 온힘을 다해 기어올라야 했다. 여기저기서 짐이나 자판기 등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구조된 김모씨는 “물이 너무 빨리 차오르다보니 미처 문 쪽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선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창을 깨라고 막 소리 질렀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빠져나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태주(70)씨는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사고를 겪었다. 갑자기 배가 기울어지자 난간을 붙잡고 옆에 같이 매달렸던 남성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남성은 “나도 모르겠다”고 했고, 함께 매달려 있는 사이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자기 위치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팔 힘이 떨어진 이씨는 거미처럼 기어서 배 위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오르다 한 남성이 던져준 구명조끼를 입고 배가 기울어지는 반대편으로 필사적으로 이동했다.
배에 적재된 짐이나 컨테이너 등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다친 사람도 많았다. 해경에 구조된 단원고 정모(16)양은 “객실에 있었는데 곧바로 복구될 줄 알았다”며 “넘어진 아이들은 좁은 방 안에서 칸막이 등에 충돌하면서 찰과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제주도민 이종섭(50)씨는 “한 달에 7~8번은 이 항로를 운항하는 배를 타는데 이번엔 경로가 평소와 달랐다”며 “원래 오늘 좌초한 현장 근처에 있는 섬은 빙 돌아서 가는데 섬이 보이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다. 안개도 없어 시야도 좋았고 파도도 잔잔한 편이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더니 가라앉아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배가 급격히 침몰하면서 선실 밖에 있던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수온이 10~12도에 불과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사투를 벌였다. 구명조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든 승객도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오후 9시 현재 174명이 구조됐지만 가라앉은 배 안에는 여전히 많은 승객이 있었다. 생존자 강모씨는 “나는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방에서 일찍 나와 구조될 수 있었는데 방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도=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진도 여객선 침몰] 45도 이상 기울어진 갑판서 벽에 기대거나 난간 매달려
입력 2014-04-17 04:42 수정 2014-04-17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