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초기 우왕좌왕·구명조끼 착용 늦어… 사고도 대응도 후진국형
입력 2014-04-17 04:45 수정 2014-04-17 15:58
당국·선사 측 조치 문제점과 구조 현황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와 해양경찰청 모두 사고 대응 매뉴얼의 부재로 초기대응에 미흡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구조에 나섰지만 대규모 사망·실종을 막지 못했다. 해경은 늑장 구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사건 발생 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각종 장비를 총동원했다. 해군은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1만4000t)과 구축함인 대조영함(4500t), 호위함(1800t)인 서울함과 충남함, 상륙함인 향로봉함(2600t), 초계함인 대천함(1200t), 유도탄고속함(450t) 1척, 고속정(200t) 5개 편대의 10척, 항만지원정 2척 등 28척의 함정을 급파했다. 또 해상초계기(P-3C) 1대, 해상작전헬기(LYNX) 1대, 수송헬기인 UH-60 3대도 투입했다.
미군 상륙강습함인 본험리처드함(4만t급)도 구조작전에 긴급 투입됐다. 해군은 수중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해난구조대(SSU) 107명과 특수전 전단(UDT/SEAL) 196명 등 구조대 229명도 투입했다. 공군도 구명보트를 탑재한 C-130 수송기와 구조헬기인 HH-60와 HH-47를 현장에 급파했다. 육군은 특전사 신속대응부대 150명과 함께 경비정 4척, CH-47 헬기, 구급차 11대, 대형버스 9대 등을 지원했다.
군이 총력 체제로 구조에 나서면서 오전만 해도 승객들이 대부분 구조되는 것 아니냐는 안도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오후 들어 대규모 288명 사망·실종 소식이 전해지면서 구조체계가 제대로 작동됐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사고 초기 현장 수습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실종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한때 승객 상당수를 구조한 것처럼 발표했다가 뒤늦게 집계 착오였다고 수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유족과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지적이다.
해경은 다수인명구조 매뉴얼을 통해 해상종합훈련을 해 왔으나 이번 사고에서는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해경은 매뉴얼에 따라 해군 등 유관기관에 즉각 상황을 전파하고, 수협을 통해 민간 선박에까지 협조를 구했지만 민간 선박들이 어느 정도 인명을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상황보고서에 한 줄도 넣지 않았다. 해경은 ‘구명조끼 입기운동’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번 사고 과정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생존자들은 해경 도착 10분전에야 ‘구명조끼’를 입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수색작업에 나선 해군과 해경은 시야가 흐리고 거센 물살 때문에 악전고투했다. 오전 9시30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B-511호 헬기를 급파해 승객 18명을 첫 구조했다. 선체 기울기는 60도로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태가 심각한 상황을 감안해 해경은 오전 9시15분 진도군청에도 협조를 구했다. 이어 9시16분 인근에 항해 중인 선박 3척에도 구조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경비함 123정(100t급)은 오전 9시50분 승객 80명을 구조했다. 오전 10시10분 경비함 123정은 구조한 승객 79명을 완도군청 행정선에 인계했다. 오전 10시20분 선체는 90% 이상 침몰 상태였다. 해경은 일단 오후 8시쯤 선체 수색작업을 중단한 뒤 17일 오전 1시 정조시간에 해군과 해경 잠수부 300명을 투입해 조명탄을 쏘아가며 선체 내부 수색을 재개했다.
모규엽 기자,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