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맥증권 “실수 한번에 퇴출이라니…” 초유의 행정심판 청구

입력 2014-04-17 03:31


옵션시장 주문 실수로 인가 취소 갈림길에 놓인 한맥투자증권이 신제윤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수를 회복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은 허술한 자본시장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한맥증권 강교진 부사장은 16일 국민일보와 단독으로 만나 “지난 14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결정 취소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강 부사장은 금융위원회의 경영개선명령에 따라 지난 1월 15일부터 7월 14일까지 6개월간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퇴출을 앞둔 금융회사 임원이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 초유의 일이다.

◇“관리인 있는데, 회의하시면…”=강 부사장은 “일개 중소형 금융회사 임원이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할 때까지 수없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6개월 영업정지 및 경영개선 기간 동안 회사의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남은 직원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 모였던 1월 22일, 금융 당국과 예금보험공사에서 파견된 관리인들은 “직무정지를 당했을 때 업무지시를 내리면 안 된다”고 막았다. 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관리인들은 혹여 이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직무집행이 정지되더라도 경영정상화 관련 업무는 할 수 있다’고 명시된 공문이 무색했다.

해외 기관투자가로부터 착오매매 이익금을 돌려받는 일도 관리인 체제 하에서는 어려웠다. 옵션 사고로 360억원대 이익을 가져간 미국 시카고 소재의 헤지펀드 ‘캐시아’는 “우리가 거래 당사자인 줄 어떻게 알았느냐”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강 부사장은 “시카고에 가서 드러눕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관리인들은 ‘가지 말라’고 제지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비용을 쓰지는 못하게 했다.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 국내의 기관을 만나러 다닐 때도 늘 타던 업무용 차량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뭘 해도 안 됐던 그날=사고가 있던 지난해 12월 12일은 직원들이 부사장실 창에 빨간 하트 모양의 롤링페이퍼를 붙여준 날이었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역사는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합니다. 한맥의 역사는 부사장님의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시간은 짧았다.

외부에서 시스템 매매를 맡은 협력업체 계약직 직원은 오전 9시부터 143초 동안 주문 오류를 냈다. 옵션시장 거래에서 잔존일수를 1년 일수인 ‘365’로 나눠 입력해야 했는데, 이 직원은 실수로 ‘0’으로 나눠 버렸다. 콜옵션(살 수 있는 권리)과 풋옵션(팔 수 있는 권리)이 엉뚱한 가격대에서 무한대로 체결됐다. 사색이 된 직원들이 컴퓨터 전원 선을 뽑았지만 이미 466억1407만원의 손해가 발생한 뒤였다.

오전 11시38분부터 수기로 구제 등록을 시작했지만 결국 마감시한을 넘긴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강 부사장은 “코스콤이 도움을 주려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결국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구제신청 건수가 늘어나지 않아 오후 4시쯤 알아보니 프로그램 버그였다고 한다.

1조9000억원이던 고객 예탁자금은 99.984%가 반환되고 2억5000만원이 남았다. 남은 돈은 수감 중인 이들이 찾아가지 못한 돈이라고 한다. 사고가 나기 전날 강 부사장에게 롤링페이퍼를 써주던 직원들은 대다수가 집으로 돌아갔다. 151명 중 119명이 사고 다음날 퇴직했고, 꾸준히 줄어든 직원은 이제 20여명이다. 다만 변수값을 잘못 입력한 협력업체 직원은 한맥증권 직원 다수와 달리 직장을 잃지 않았다. 강 부사장은 직원들이 쓰던 책상과 의자로 채워져 반쯤 창고가 돼버린 한맥증권 9층을 돌아보며 “경영자산관리 마무리 작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강 부사장은 ‘전원을 뽑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는 “주변에서 466억원이 아주 애매한 수치라고 말한다”며 “아예 피해가 더 커지도록 뒀다면 그때는 (금융 당국이나 거래소 등이) 적극적으로 구제 절차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쓸쓸히 말했다.

진삼열 이경원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