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성규] 생물주권시대 선제 대응해야

입력 2014-04-17 02:33


‘슬근슬근 톱질하세.’ 초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실린 흥부가 박타는 장면이다. 착한 흥부는 구렁이에 쫓겨 다친 제비를 정성껏 고쳐주었고, 이듬해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었으며, 박 속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되었다. 전래동화에 나올 만큼 제비는 흔한 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판이하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에 가도 제비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제비만이 아니다. 따오기 황새 여우 반달가슴곰 등 겨레와 함께한 많은 동물들이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지난 한두 세기 지구촌에서 거침없이 진행된 경제개발 과정에서 야기된 생태계 단절, 환경오염, 기후변화, 외래종 유입, 남획 등으로 생물종과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유엔 주도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95개국에서 1360명의 전문가가 참가한 ‘새천년 생태계 평가’는 인류에 의해 초래된 생물종의 멸종 속도는 자연 상태의 약 100∼10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다음 세기까지 포유류의 25%, 양서류의 32%가 멸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류는 원시시대 이래 생물체로부터 식량과 에너지, 의약품 그 밖에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얻어왔다. 생물종의 감소는 물자의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추세가 지속되어 이른바 전환점(tipping point)에 이르게 되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1992년 리우회의를 계기로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 그리고 유전자원의 이용에 따른 이익의 공평한 분배를 기치로 생물다양성협약을 채택했다. 생물다양성협약은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양대 환경협약의 하나다.

생물다양성협약이 다루는 범위는 자연생태계뿐 아니라 농업 임업 수산업 생명공학에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내용 또한 자연과학적 지식에서부터 지식재산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협약은 표면적으로는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협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들여다보면 생물산업과 생물주권에까지 연관되어 선·후진국 간 입장차가 있는 국제규범이다.

협약역사를 살펴보면 1993년 12월 발효 후 지난 2003년에는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다룬 부속의정서(카르타헤나 의정서)가 발효됐다. 2010년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제10차 당사국총회가 열리면서 유전자원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돼 이익 공유 문제가 국제적 의제로 부상했다. 나고야 총회는 ‘2011∼2020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을 채택하면서 생물종 멸종 억제, 보호지역 확대, 외래종 대응, 인식제고 등 20가지의 목표를 제시했다.

협약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2년 주기의 당사국총회다. 올 10월 강원도 평창에서 제12차 총회가 열린다. 이번 총회에는 세계 193개국의 대표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등 약 2만명이 참가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총회는 2010년 채택된 ‘2011∼2020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의 이행상황을 중간점검하고 향후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뜻깊은 회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국립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을 설치·운영해 왔다. 세계자연보전총회와 람사르협약·사막화방지협약 당사국총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정부는 이번 총회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함으로써 다가오는 생물주권시대에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한 차원 높이고자 한다. 나아가 초·중·고·대학생과 일반인,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과 그들의 참여를 통해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제고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번 총회가 성공리에 열릴 수 있도록 전 국민의 아낌없는 관심과 성원, 참여를 부탁드린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