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쌀 시장 개방 불가피한데 빗장 풀 준비 돼 있나

입력 2014-04-17 03:41

쌀 시장 개방(관세화)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로 모든 상품 시장을 개방하게 됐음에도 우리나라가 쌀 시장 개방을 올해 말까지 20년간 두 차례나 미룬 것은 국내 농가의 주 산업인 데다 농민들과 관련 단체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쌀 시장 개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세계무역기구(WTO) 159개 회원국 중 쌀 시장을 닫아놓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필리핀뿐이다. 그런데 두 차례 쌀 시장 개방을 연기했던 필리핀이 지난주 5년간 개방을 추가로 연기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쌀의 양을 2.3배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해관계국들이 추가의무 부담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오는 9월 WTO에 쌀 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6월까지 쌀 시장을 개방할 것인지, 아니면 의무수입 물량을 더 늘리고 시장 개방을 미룰 것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쌀 시장 개방은 민감한 문제인 만큼 국회에 먼저 보고하고 공감대를 얻겠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의식해 쌀 시장 개방 공론화를 미루는 모양이지만 한가롭게 여론이나 살피면서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석 달 만에 농민들을 설득해서 WTO에 통보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쌀 시장 개방을 미룬 대신 의무수입 대가가 더 크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고 있다. 올해 의무수입 물량은 국내 생산량의 9%인 40만9000t에 달한다. 20년간 쌀 의무수입에 쏟아 부은 비용이 3조원에 달하고 남는 쌀 보관 비용도 해마다 수백억원씩 든다.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가 줄면서 지금도 쌀이 남아도는 실정인데 의무수입 물량을 더 늘릴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쌀 수입이 많은 필리핀은 의무수입 물량을 늘려도 상관없지만 우리는 현재보다 2배가량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면 쌀 농가의 타격이 오히려 커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쌀 소비량이 많은 일본과 대만은 쌀 시장을 개방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20년 전에는 국내외 쌀 가격차가 4배가량이었지만 지금은 2배로 줄어 예상대로 300∼500% 관세율을 매긴다고 하면 국산 쌀이 가격에서도 유리하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야당과 농민단체들을 상대로 쌀 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일단 쌀 시장이 개방되면 각종 자유무역 협상에서 추가 관세인하 요구가 있을 것이란 우려도 불식시켜야 한다. 농민들도 농가가 다 망한다거나 식량주권을 잃게 된다며 반대만 할 때가 아니다. 잡곡 등 쌀 이외의 재배 품목을 다양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게 농가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