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영서 (4) 기도원의 회심 “주님, 제 잃어버린 삶의 조각을…”

입력 2014-04-17 02:34


사고치고 도망온 기도원은 통성기도와 찬양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조용한 곳을 물색하다 빈방이 있어 들어가 눈을 붙이려는데 아저씨 두 사람이 들어왔다. 예수를 믿는 분이 어려움을 만난 불신자를 데리고 와 열심히 전도하는 눈치였다.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원까지 함께 온 그 열의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심심했던 나는 아저씨가 전도용으로 가져 온 ‘잃어버린 삶의 조각들’(리 이젤 목사 저)이란 번역 서적을 빌려 읽었다. 지금은 여목사가 된 저자가 18세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되는 비극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삶이 극적으로 변화된 내용을 담은 간증집이었다.

이젤 목사는 폭력 아버지를 피해간 다른 곳에서 성폭력을 당해 임신한 현실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라고 울며 부르짖는다. 결국 내가 어머니의 죽음에 신앙을 저버린 이유와 비슷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젤 목사는 선한 사마리아인 크로포드 가족을 만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자신이 출산할 때까지 돌봐준 크로포드 아줌마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단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너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른단다.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이젤 목사는 출산한 아이를 입양해 보낸 뒤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고 나중엔 잃었던 딸과도 재회한다.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게 다가오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한 저자는 오히려 이것을 극복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난 이게 무엇인가. 어머니가 날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지금 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회개의 눈물을 쏟았다. 나도 이젤 목사처럼 잃어버린 삶의 조각을 맞춰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어떻게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도망까지 친 처량한 신세가 됐는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폭력을 행사한 상대와 수습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기도원에 가도록 만드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섭리를 찾았다. 어머니가 기도하신 대로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과감하게 어둠의 생활을 청산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려는데 쉼 없이 유혹이 밀려왔다. 아직 젊었던 나는 마음을 다지려 해도 예전의 습성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비상대책으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생활은 바쁘게 살아온 내게 오히려 휴식기였다.

제대 후 신학교에 복학했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해 경기도 산본 개척교회 전도사로 사역했다. 한 달 10만원이 사례비였다. 턱없이 부족해 아파트 건설 현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보탰다.

신학생에 전도사에 막노동에 정신없이 살았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때 읽은 많은 책이 후일 내 시야를 넓혀주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이 시절에도 사업에 관심이 많아 서울 종로에 ‘500냥 하우스’를 차리는 등 이것저것 손을 댔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사건이 생겼다.

오전과 오후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가게 두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모두 손님들로 넘쳐났다.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에 대해 처음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진 내 자본력으로 남의 노동력을 이용해 사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주가 자본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나는 가게 운영의 노하우와 경험을 파는 효율적 사업인 것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치셨던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 머리에서 ‘바로 이것!’이라며 파란불이 번쩍 켜졌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