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증거조작 대국민 사과] 다급했던 국정원, ‘안방’ 서 TV생중계 사과

입력 2014-04-16 03:03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인 남재준(70) 국가정보원장이 15일 국정원 안방에서 벌인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는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취임 때 ‘전사(戰士)’를 자처했던 남 원장은 15일 전국에 생중계 되는 TV카메라 앞에서 3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 원장은 오전 10시 굳은 표정으로 국정원 청사 기자회견장 단상에 섰다. 30여초간 카메라를 응시하다 마른 침을 삼키며 준비해 간 원고를 읽었다. 한기범 1차장, 김규석 3차장, 이헌수 기조실장이 회견장 구석에 배석했다. 서천호 2차장은 전날 책임을 지고 물러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 원장은 먼저 카메라를 향해 한 차례 고개 숙인 뒤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대목에서도 고개를 숙였고, 낭독 후 다시 한 번 인사한 뒤 성큼성큼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사과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기자들이 “질문 하나 하겠다”며 불러 세웠지만 남 원장은 대꾸하지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남 원장은 원고의 시작과 끝을 사죄의 문장으로 채웠다. 나머지는 엄격한 자기통제 시스템 구축 등의 국정원 ‘셀프 개혁’을 다짐하는 내용에 할애했다. 최근 벌어진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과 무인기 사건을 거론하며 엄중한 한반도 정세를 강조하기도 했다. 총 12문장 중 대국민 사과는 3문장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일부 직원들’이 증거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로 규정했다.

남 원장의 입장발표가 준비되는 과정에는 국정원이 처한 다급한 상황이 묻어났다. 국정원은 전날 서울중앙지검 증거위조 수사팀 수사결과 발표 이후 5시간여 만에 서 차장의 사의 표명을 알려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즉시 사표를 수리하자 국정원은 오후 10시50분쯤 법조 출입기자단에 남 원장 입장 발표 계획을 알렸다. 거취 문제와는 관련 없는 대국민 사과 성명이라며 발표 직전까지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제한)도 요구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워낙 급박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결정이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이날 오전 기자단을 위한 버스 2대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보냈다. 기자들은 일일이 신원 확인을 받았고, 소지하고 있던 노트북과 휴대전화의 카메라에 붉은색 보안 스티커까지 붙인 뒤에야 청사 출입을 허가받았다. 국정원은 청사 출입구에서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홍보관까지 길목 곳곳에 직원들을 배치해 기자들의 동선을 통제했다.

회견장에는 50여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기자단이 “질문도 받지 않고 기자들을 왜 불렀느냐”고 항의하자 국정원 측은 “사과하는 자리라서 일문일답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정원은 회견장 안팎에도 직원 20여명을 배치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남 원장의 사과문을 무표정하게 들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