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내전 터지나… 크림 닮은꼴 되나

입력 2014-04-16 03:31 수정 2014-04-16 14:58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친(親)러시아 무장 세력과 정부군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서방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크림 사태 2차전’인 셈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해결책 모색을 위해 전화 통화를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안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15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도네츠크주 북부에서부터 분리주의 시위대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안드리 파르비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근위대 1개 대대가 동부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이후 정부군은 도네츠크주의 크라마토르스크 인근 군용 비행장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분리주의 의용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진압 작전 돌입 이후 첫 교전이다. 의용대 관계자가 이 과정에서 대원 여러 명이 사상했다고 주장했다.

동부 지역 친러 무장 세력은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도네츠크주의 관청 10여곳을 점거했고, 슬라뱐스크에선 경찰청과 비행장까지 장악했다.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14일 밤에는 조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올렉 차례프 후보가 방송 출연을 하고 나오다 시위대에 폭행을 당했다. 하리코프주 주지사를 지낸 미하일 도브킨 후보는 같은 방송국에 들어가려다 물감과 밀가루 세례를 받고 급히 현장을 떠났다.

러시아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공대지 폭격 능력을 가진 러시아 수호이(SU-24) 전투기 두 대가 지난 12일 흑해에 배치된 미 구축함 도널드쿡 주변을 고속으로 저공비행했다고 밝혔다. 그중 한 대는 구축함에 1㎞ 이내까지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런 도발적 행위는 국제 조약 및 양국 군사 협약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흐름은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에 편입될 때와 거의 같다. 최근 10여일간 친러 세력은 군복 차림에 총기를 소지하고 건물을 장악한 뒤 우크라이나 국기 대신 러시아 국기를 올렸다. 러시아계 주민은 이들을 지지했고, 시위대는 주민의 뜻이라며 분리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접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며 위협을 가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처럼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라는 기름에 러시아가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있다”고 비유했다.

유럽연합(EU)은 룩셈부르크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의했다.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 대상자를 늘린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추가 제재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 아셀보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은 “러시아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17일 열리는 4자회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동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시위는 러시아계 주민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분노를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