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KEI 기능 강화 절실하다

입력 2014-04-16 02:59


최근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들 사이에 오갔던 조그만 화제는 동아시아 전문가인 프랭크 자누지의 이직이다. 이달부터 그는 국제앰네스티(AI) 워싱턴 사무소장직을 떠나 맨스필드재단의 대표이사 겸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누지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15년간이나 근무한 미 의회의 대표적인 외교통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조 바이든 부통령의 보좌관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기서 유심히 볼 것은 자누지가 몸 담게 된 맨스필드재단이다. 공식 명칭이 ‘모린 앤드 마이크 맨스필드재단(Maureen & Mike Mansfield Foundation)’인 이 싱크탱크는 1977∼88년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맨스필드가 세웠다. 창립 당시부터 일본 자금이 많이 들어갔다. 요즘도 ‘큰손’이 도요타, 전일본공수(ANA),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이다. 한마디로 워싱턴의 대표적인 친(親) 일본계 연구기관이다. 자누지의 인선에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게 분명하다.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평소에도 아이디어가 많고 일 욕심이 강한 자누지가 이끄는 맨스필드재단을 앞으로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49세로 한창 일할 나이인데다 미 의회와 행정부를 꿰차고 있는 동아시아 전문가다. 이런 인물을 ‘낙점’한 일본 정부의 눈과 노림수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외교전이 치열하고 집단자위권 추진 등 양국간 안보·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사안이 중첩해 있다. 자누지의 광범위한 인맥과 전문성에 일본 정부는 주목했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일본에게 맨스필드재단이 있다면 한국계 연구기관으로는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있다. 민간 기부금이 아니라 100% 우리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입김이 더 직접적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올해 연간 운영비로 250만 달러(약 26억원)가 책정됐다.

하지만 KEI가 이처럼 거액의 예산을 받은 만큼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해 이후 한·일간 역사문제,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 한국인 전문직 비자 확대 등 우리 국익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 잇따랐다. 하지만 KEI가 워싱턴 조야의 주목을 받는 이벤트를 개최한 기억이 없다.

지난해 이후 연구소 소장을 맡은 도널드 만줄로(70) 전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의 리더십과 성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10선 의원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거액의 몸값을 주고 데려왔지만 실제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리아 코커스’ 소속 의원 보좌관들은 만줄로 소장이 이미 2012년 에릭 캔터 하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와 사이가 크게 벌어졌었다며 ‘그의 영향력을 기대했다’는 설명에 고개를 갸웃한다. 의회를 꿰뚫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필요와 요구에 정통한 ‘실무 조정역’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어떤 면에서 KEI는 미 의회와 행정부에 한국의 시각을 알리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한국 의원들의 출장을 뒷바라지하거나 직속 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발표 자리를 마련하는 등 ‘한국 연구소의 워싱턴 출장소’ 같은 인상을 준다.

연간 26억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을 이처럼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관에 낭비할 게 아니라 검증된 싱크탱크에 한국연구석좌직(코리아 체어)을 증설하거나 연구프로젝트를 발주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듯하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