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수도권 발전 전략’ 청사진… ‘징진지 일체화 발전’ 중국 새 성장 동력으로

입력 2014-04-16 03:04


“베이징은 수도로서 갖춰야 할 기능 중 비(非)핵심 기능을 분산시키되 정치, 문화, 국제 교류, 과학기술 혁신에 있어서 전국의 중심이 되는 핵심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하순 베이징시를 시찰한 자리에서 가진 ‘징진지(京津冀) 공동 발전 좌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징진지 일체화 발전’이 요즘 중국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징진지’는 베이징(京), 톈진(津), 허베이(冀) 3개 지역을 합해서 부르는 말이다. 시 주석은 징진지 일체화 발전을 국가 차원의 중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유명 경제학자인 차오허핑(曹和平·베이징대 경제학원) 교수는 “21세기 중엽에는 ‘징진지 일체화’가 과거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크게 발전했던 것처럼 중요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징진지 경제권에는 50여개 현(縣)이 포함되며 인구는 1억5000만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징진지’는 주장(珠江) 및 창장(長江) 삼각주 경제권에 이어 연간 역내총생산(GRDP) 1조 달러가 넘는 제3의 경제권이다. 전문가들은 징진지 경제권이 향후 20년 동안 중국의 성장을 이끌 새로운 엔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국무원 산하 국가발전계획위원회(발개위)는 지난 9일 홈페이지에 올린 발표문을 통해 “징진지 일체화 계획을 마련 중이며 이를 곧 발표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징진지 일체화’라는 개념이 처음 제시된 건 30여년 전인 1982년이다. ‘베이징 도시건설 총체 계획방안’에서다. 당시에는 ‘수도 경제권’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 방안은 베이징과 톈진을 두 핵으로 하되 허베이(河北)성의 여러 도시를 포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10년여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주장 삼각주와 창장 삼각주 경제권이 확정된 뒤인 1994년에는 징진지를 포함하는 ‘환보하이(渤海)경제권’ 계획이 발표됐다. 환보하이 경제권에는 베이징, 톈진 2개시를 비롯해 허베이, 산둥, 산시(山西), 랴오닝 4개 성과 네이멍구 중부지역이 들어간다. 이러한 계획도 지역별 이해관계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

베이징은 ‘징진지 일체화’라는 개념이 마련되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인구 500만명 정도를 주변 도시로 이주시킨다는 구상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시 주석의 좌담회 주재 이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징진지 일체화 계획에 따르면 베이징은 첨단 기술과 문화,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톈진은 선진 제조업(정보통신, 자동차, 제약 등)과 물류, 금융 보험 등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허베이성은 이에 맞춰 지난달 26일 ‘허베이성 신형도시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획은 베이징 주위에 10여 개 위성도시를 만들어 수도권 일부 기능을 흡수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행정 부도심 기능을 강화하고 친환경 제조업을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허베이성은 베이징, 톈진에 비해 경제가 낙후돼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이다. 예를 들면 2012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베이징과 톈진의 경우 9만 위안(약 1500만원)가량이었으나 허베이성은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만 위안에 불과했다.

산업구조면에서도 세 지역간 차이는 크다. 베이징은 서비스업(금융, 통신, 정보기술)이 발달해 3차 산업 비중이 76.5%나 된다. 톈진은 항공, 석유화학, 첨단장비제조, 생물·제약, 신 에너지 등 분야에서 앞서 있다. 허베이성의 경우 철강, 석유화학, 건축자재 등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중공업 분야가 전체 공업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베이징시는 수도권 일체화에 따라 외곽으로 이전할 207개 기업을 이미 톈진과 허베이성에 통보했다. 화학공업, 건축자재, 주조 등 ‘3고 1저’ 산업이 주로 선정됐다. ‘3고 1저’란 고투입, 고에너지소모, 고오염, 저효율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상 기업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낙후된 업종들이어서 톈진과 허베이성은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일체화를 위한 교통과 통신망 정비도 시작됐다. 2020년까지는 베이징-톈진-스자좡(石家莊) 사이가 3개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베이징과 허베이성 사이에 지하철과 경전철을 건설해 ‘교통 1시간 이내 권역’을 구축한다. 허베이성 13개 시와 현의 지역 전화번호를 베이징과 같은 ‘010’으로 바꾸는 등 동일한 통신권을 만든다.

보하이만 바닷물을 담수화해 5년 내에 베이징 시민이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이를 통해 생활용수 하루 100만t을 공급하게 되며 이는 베이징 전체 용수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20년이면 징진지 일체화를 위한 기본적인 건설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허베이성 바오딩(保定) 등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게 불 정도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수도권 일체화보다 부동산 가격 일체화가 먼저 이뤄졌다”고 한탄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 남지은 과장은 “공공 인프라 수요 증가로 교통, 건설, 환경보호 등 관련 산업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며 “요식업, 숙박업,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에 있어서 새로운 수요창출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