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정구] 삼성電·현대車 무너진다면

입력 2014-04-16 03:05


최근 국내 주요 재벌그룹들의 수익성에 대한 보고를 보면 지난 2008년 발생한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빴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3년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20대 재벌그룹 계열사(금융사 제외)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합계는 각각 1076조원, 61조원으로 영업이익률은 5.6%였다. 매출 1000원당 벌어들인 수익이 56원이라는 의미다. 이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몰아친 지난 2008년 63원보다 10.3%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또 다른 함정이 숨어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통계에서 뺀다면 대다수 그룹은 실제 기업을 운영하지만 이윤은커녕 종업원들의 인건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국면이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대한 한국경제의 종속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가치창출은 직간접적으로 이 두 회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장은 더욱 작동하지 않고, 내수는 부진해지고, 이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두 회사가 무너졌다고 가정할 때 한국경제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비슷한 사건이 핀란드의 대기업 노키아가 무너진 사건이다. 하지만 노키아 사건은 핀란드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노키아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인재들도 중소 중견기업에 다 흡수되어 기술적 재분배가 더 건강하게 이뤄졌다. 이 기적은 핀란드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으로 구성된 조직생태계라는 튼튼한 허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단언컨대 노키아의 기적이 한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심각하게 종속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는 두 회사가 무너지면 그대로 나라가 무너지는 형국을 초래할 것이다. 혼돈이론과 비선형적 경제기반이 지배하고 있는 21세기의 글로벌한 세계에서는 거대한 공룡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관료제적 공룡기업 형태가 현대의 산업생태계가 공진화하는 글로벌 방식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없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근원적 변혁인 한국경제의 갬마 혁신(Gamma Innovation)이다. 갬마 혁신이란 한국경제의 현 패러다임 자체를 조금씩 고쳐서 문제를 고식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현 체제가 무너져 작동하지 않는다는 제로섬 가정에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업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두 회사가 없다고 가정하고 한국경제를 조직생태계의 공진화가 가능한 중견기업과 진취적 혁신자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급진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모든 인적 자본과 사회적 기반, 지원시스템도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글로벌한 경쟁력이 있는 중견기업들을 육성하는 플랫폼 체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 플랫폼에서는 능력 있고 창의적인 젊은 벤처창업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실패 비용을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심리적 안정지대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윤을 내지 못하는 대기업들은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서 문을 닫고 이를 통해 축적된 자원을 다양한 글로벌 중견기업의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재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서서히 끓는 물에서 죽어가는 개구리 형국이다. 개구리는 변온동물이어서 자신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개구리를 잡아다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에 집어넣고 개구리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어가며 온도를 10도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자신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믿음에 갇혀서 온도가 100도가 되더라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다. 글로벌 경제의 온도는 이미 비등점인 100도를 향해서 치닫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주체들은 아직 이 점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