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교수가 장애인 공동체로 간 까닭은…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입력 2014-04-16 03:04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포이에마

“문을 나서자마자 내면의 자유와 환희, 새로운 에너지가 엄청나게 솟아나던지 여태 살았던 삶이 스스로 자신을 가두었던 감옥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허세가 심한 동네기는 하지만, 거기서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몇몇 벗들을 만났고, 타협 없이 예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갈망을 절절히 감지했으며,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과 더불어 살며 사역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아마 하버드가 없었더라면 내게 라르쉬도 없었을 것이다.”(45쪽)

저자인 헨리 나우웬(1932∼96)이 1985년 9월 9일 하버드대를 떠나며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교수직을 내려놓는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지만 한 점 아쉬움이 없다고 그는 밝혔다. 오히려 더 큰 기대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평생 함께할 지체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라르쉬에서 산다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더 투명한 마음을 향한 초대’도 거기에 들어갈 것이다. 진정 예수님은 짐스럽고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 장애인들의 상한 심령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이들을 선택하여 거룩한 임재를 널리 알릴 ‘가난한 자들’이 되게 하셨다. 성공 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좀처럼 용납되기 어려운 사실이다.”(38쪽)

그는 참 어려운,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을 택했다.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장애인과 부대끼는 삶이 곧 ‘탈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할 정도. 하지만 그는 “거룩한 사랑이 깊고 강해질 것”이라며 데이브레이크를 향한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책은 저자가 장애인과 어울려 살기까지, 단 한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껴온 것들을 써내려간 글 모음이다. 데이브레이크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 85년 8월부터 1년의 기록들이다. 기도생활,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 여러 도시에서 만난 하나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신앙 등 삶의 여러 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담겨 있다. 그렇게 영적인 씨름을 정직하게 그려낸 글들을 통해 우리 신앙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새롭게 번역, 재출간될 정도로 이 책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동을 준다. 마치 20년, 30년 후를 내다보고 쓴 것처럼 요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글들은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현대인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상당부분은 애정결핍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식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게 다가왔다.”(98쪽)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버드를 떠나왔지만 머잖아 이곳 생활 또한 대학에 있을 때만큼이나 바쁘게 돌아가겠죠. 결국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가 됐든 어떻게 사느냐가 핵심입니다. 누구한테 순종할지 결정해야 합니다.”(130쪽) “요즘 사람들은 로봇처럼 변해간다. 일에 묻혀 지내지만 내면에서 생명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다.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 무엇이든 일을 하게 만드는 듯하다. 이러한 ‘현실이탈’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더 깊은 연결로 이어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179쪽)

책을 보면 각자의 방식으로 예수님의 삶을 좇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가난의 방식을 따르려는 장 바니에. 그는 장애인 두 명과 함께 사는 것으로 시작해 전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간 라르쉬의 설립자다. 참 평안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토마 신부, 저자의 평생 친구가 된 장애인 도우미 네이선, 그리고 저자의 돌봄을 생애 큰 기쁨으로 아는 여러 장애인들…. 저자는 그들의 얼굴에서 주님을 본다. 사소한 일에 쉽게 절망하고 깊은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들을 통해 위로받는다. 고단한 일상을 사는 우리가 지금 돌아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원초적인 사랑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 ‘자신만의 데이브레이크’로 향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