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4월 16일] 달리다굼
입력 2014-04-16 02:59
찬송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540장(통 21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5장 35∼43절
말씀 :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큰 무리와 함께 계실 때 가버나움의 회당장 중 한 사람인 야이로가 달려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구했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가 그 어린 딸의 병 고침을 위해 예수님의 안수를 구했다는 것은 그의 신앙 수준을 보여줍니다.
안수란 그 시대의 자연스러운 기도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서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고 말한 백부장의 믿음이 크다고 평가한 주님의 말씀에 비춰 본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믿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적으로 영아기에 있을 때는 모세나 여호수아의 시대처럼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표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이 성장했을 때 그러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을 당신이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요점은 오늘날 안수나 기적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옛날처럼 요구하는 것은 퇴영적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죽은 아이가 누워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소녀가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났습니다. 큰 권능은 쉽게 일어납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예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죽은 자를 “잔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와 죽음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단번에 해결해 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무죄한 죽음은 우리 죄를 위한 것이고, 죽은 지 3일 만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달리다굼!”의 현재적 의미 두 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치유의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손들었다고 하는 문제, 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문제, 질병, 인간관계, 경제 문제 등 그 모든 것은 예수 안에서 치유됩니다. 둘째, 사명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미련하고 수준 낮은 생각에 사로잡힌 저와 여러분을 향해 주님께선 “달리다굼! 이제 깨어라. 일어나라.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속사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분입니다. 구원의 면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중생과 부활의 보증입니다. 치유의 면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문제 해결의 음성입니다. 깨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새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은 “먹을 것을 주라, 필요한 것을 주라”는 긍휼에 가득한 배려와 동정에 넘치는 축복과 위로를 여러분 각자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 :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믿음이 달리다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주준태 목사(송도제일교회)